기다림을 선물하려고
10월 중순부터 문득 잠에서 일찍 깨어나곤 하였다. 마음에 번거로운 일이 잠자리를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당장 11월에 ‘기다림 초’를 만들어 보급하는 일 때문이다. ‘기다림 초’를 생활화한다고 멍에를 멘 일은 스스로 자처한 일이니 누구를 원망할 것도 아니다. 따져보면 10월 중순부터 성탄준비로 근심하는 사람도 지극히 드믈 터이니, 나는 행복한 목사다.
‘기다림 초’는 11월 안으로 제작과 홍보, 보급까지 모든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 딱 한 달 만에 해치우는 번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성탄용품 가게는 반짝 장사여서 11월 초가 되어야 고속버스터미널과 남대문 시장의 마른 꽃 코너에 원재료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아직 상품화하기에는 비교적 소량을 만드니 값을 크게 할인받기도 힘들다. 그러니 11월도 전반은 준비하고, 후반은 보급해야 한다.
사실 11월에 성탄 이야기를 하는 일은 아직 때 이르다는 생각에 자꾸 주눅이 든다. 성탄 분위기를 한 달이나 앞당기는 것이니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올해 대림절은 며칠 빨라 11월 30일(주일)에 시작한다. 그리고 네 번 주일이 지나면 어김없이 거룩한 밤과 성탄을 맞이할 것이다.
대림절은 ‘겨울철의 사순절’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사순절과 대림절은 준비하는 절기답게 교회력 색상이 보라색이다. 사순절 40일을 절제하며 지낼 때 부활의 환희가 크듯, 대림절 4주 동안 경건하게 보내면 성탄의 기쁨이 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순절과 대림절은 큰 명절을 앞둔 예비절기다.
색동교회는 지난 4년 동안 ‘기다림 초’를 만들어 왔다. 독일에서 목회경험을 통해 개신교회의 신앙전통을 배운 만큼 한국 교회와 나누려는 선한 취지였다. 여러 전문가의 손을 거쳐 비로소 현재의 모델로 표준화하였고, 그 이름을 기다림의 절기 대림절에 맞게 ‘기다림 초’라고 붙였다.
그리고 10년 안에 한국 교회의 가정용 성탄문화로 정착시켜 보자고 마음먹었으니, 어마어마한 ‘꿈 집’부터 지은 셈이다. 그리고 ‘첫술에 배부르랴’ 라는 마음으로 색동여선교회가 첫 해 70개, 둘째 해 130개를 만들어 나누었고, 그리고 작년에는 ‘무려’ 800여개를 보급하였다. 그동안 딱히 손꼽을 만한 대림절 문화가 없다보니 졸지에 ‘기다림 초’가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한켠으론 반갑지만, 워낙 교회력 문화가 빈곤한 풍토라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왜 누군들 할 만 한 이 일을 진즉 시작하지 않았을까 원망도 든다.
작년부터는 장애인공동체와 협력하여, 힘을 얻고 있다. ‘요한과요한’이란 브랜드도 만들었다. 프랑스 격언에 ‘두 요한이 일 년을 나눈다네’라는 말이 있다. 두 요한은 하지의 성인 세례 요한과 동지의 성인 사도 요한, 두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이 두 축을 잇는 일 년은 그래서 하나님의 달력이다.
‘기다림 초’ 보급이 성탄을 앞두고 영혼의 등불을 밝히는 신앙운동이 되기를 기대한다. 가정 마다 대림절 4주 동안 네 개의 촛불을 차례로 밝히며 꽤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폰과 씨름하던 사람들이 그 산만을 내려놓고, 어둠 가운데 촛불에 둘러앉는 풍경은 사뭇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묵상을 하든, 차를 마시든, 음악을 듣든, 나직히 대화를 하든 평안의 깊이와 공감의 넓이를 제공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브랜드인 성탄과 이를 예비하는 대림절기가 온통 상업화되고, 세속화된 축제로 변질되는 현실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선교에 대한 이해를 바꾼다면, 우리 사회에 경건의 문화를 보급하는 일도 중요한 선교가 아닐까? 성탄은 다시 가난한 마음의 구유를 회복해야 한다. ‘아기 예수 뉘신 곳’(눅 2:12), 오늘 교회가 마땅히 설 자리이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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