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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31 01:45
   
폭력을 품은 평화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36  


폭력을 품은 평화


‘평화’라는 단어를 품고 막 태동하려는 한 모임에 다녀왔다. 그들은 앞으로의 한국 교회를 평화를 누리고 평화를 전하는 교회로 만들겠다는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히 주님의 평화를 꿈꾸고 있었다. 예수께서 주시겠다던 평화는 당시 ‘팍스 로마나’로 대변되는 제국의 평화와는 확연히 다른 평화였다. 그 평화는 힘의 우위로 획득되고 유지되는 평화가 아니라, 전복된 힘의 질서 아래 분배의 정의가 실현된 평화였다. 그러나 그래서일까? 평화를 말할 때마다 우리는 철저하게 폭력이 배제된, 완벽하게 힘과 무관한 그 무엇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과연 주님의 평화에는 그 어떤 성격의 폭력도 들어있지 않은 것일까?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한 에베소서의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맺는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셨습니다.”(엡 2:14) 그리스도의 평화는 중간에 막힌 담을 폭력적으로 헐어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분리의 담을 부숴버리는 것으로부터 평화는 시작되었다. 담을 부수는 폭력이 평화를 만드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평화가 중간에 막힌 담,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헐어버리는 것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쩌면 그것은 평화란 구분된 둘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시키는 소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구분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적극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평화는 둘 사이의 분란을 조정하거나 다툼을 중재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평화는 둘 사이를 가로지는 담을 헐어버릴 때에야 비로소, 다시 말해 더 이상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분이 없을 때에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어야,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어야, 주인과 노예의 구분이 없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는 가능하다.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부숴야 비로소 하나님의 평화는 가능한 것이다. 힘으로 인한 구분의 담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여전히 존재하는 구분 속에는 오직 거짓 평화만 존재할 뿐이다. 교회라고 예외일 리는 없다. 목사와 평신도 사이를 가르는 담이 존재한다면 교회에 평화가 있을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날카로운 칼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라 경우와 사람에 따라 선용되고 악용될 수 있는 것처럼, 폭력도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아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도 불가피하게 폭력은 필요하다. 힘을 가진 자들은 그 힘을 독점적으로 향유하기 위해 높다란 벽을 쌓고 끊임없이 타인을 분리시킬 것이기 때문이며, 평화란 오직 이 벽을 부숴버리는 것으로만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없는 상태만으로 평화가 아닌 것처럼, 갈등이 없는 상태가 곧 평화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진정한 평화는 분쟁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리라. 평화는 이렇게 어쩔 수 없는 폭력을 제 안에 품는다. 그러니 반대로 그 어떤 갈등도 없는 평화라면 오히려 거짓 평화일 가능성이 크다. 예수께서 몹시도 싫어하셨던 그 거짓 평화 말이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마 10:34)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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