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중
2002년도에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리자 낯선 장면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사람들이 공항 안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금연 열풍이 불면서 공항이나 대합실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습니다. 부득이하게 담배를 피우려는 사람은 흡연실을 찾아야 했습니다. 좁은 유리 밀실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들의 모습은 참 처량해 보였습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낯선 사람들과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얼굴을 그렇듯 가까이 대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고문에 가까워보였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담배를 그렇게 대놓고 피우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도 애연의 권리가 있다. 그것을 금연의 논리만 가지고 박탈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공항 환기 시설에 더 많은 투자를 해서 깨끗한 공기를 공급하는 것이 금연지역을 선포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훨씬 더 인간적’이란 말에 머리가 쭈뼛했습니다. 이제껏 금연은 모두를 위한 인간적인 조치라는 생각을 해 왔는데 생각해보니 일방의 생각일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온 것입니다. 흔히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혹은 내가 싫어하는 낯선 일이니까 그렇게 해도 문제없다는 데 익숙했던 생각의 방식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지요. 지금도 프랑크푸르크 공항에서 담배를 피우는지 알 수 없지만 뿌연 담배연기를 통해 눈이 환히 밝아지는 경험을 했다고나 할까요.
이왕 독일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경제학자 김기원교수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소개해보지요. 한 번은 독일에서 지하철을 탔답니다. 열차가 역에 도착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더랍니다. 한국처럼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를 기대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독일 지하철은 열차가 서면 승객이 문을 스스로 열고 내리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김기원교수는 그 경험을 통해 독일 사회의 시스템을 이야기합니다. 독일 사회는 소비자가 더 많이 움직여야 하는 불편한 나라라고.
한국이나 일본은 소비자가 왕입니다. 그런데 소비자가 왕이 되려면 노동자는 더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굉장히 큰 겁니다. 독일사회는 지하철 문 여는 것에서부터 전자제품 고치는 것까지 소비자 많은 걸 스스로 해결하고 챙겨야 하는 사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서비스 사막 독일’이라는 말이라지요. 요컨대 소비자가 노동을 분담하는 만큼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인 셈입니다. 짧은 독일 이야기 속에 독일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보입니다. 인간 존중입니다. 사회시스템 안에 인간에 대한 배려가 깊이 담겨 있습니다.
많은 매체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합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문과를 지원하지 않는답니다. 대학은 인문학과들이 고사 위기랍니다. 취업이 안 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기피한다는 것이지요. 인문학의 위기는 곧장 인간존중의 위기로 연결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안전 불감증은 공학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존중의 사회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인문학의 부재에서 오는 위기입니다.
하긴 누굴 탓하겠습니까. ‘대안연구공동체’와 ‘기독인문학연구원’에서 공동 개설한 <루터의 종교개혁: 역사의 눈에 비친 빛과 그림자>라는 기독인문학 강좌가 5명의 수강생이 없어 폐강되는 현실에서 말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3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눈에 보이는 행사 마련에만 급급한 한국 교회의 현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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