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눈으로, 술은 입으로
벌써 초가을이다.
시인 예이츠는 "사랑은 눈으로 들고, 술은 입으로 든다"고 노래했었다.
숲속의 가을은 귀로 듣는다.
가을을 적시는 풀벌레 소리들, 갈잎 지는 소리들로 가을은 시작된다.
나의 가을은 구르몽의 시 "낙엽”이 연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
낙엽은 날개 소리, 여자의 옷자락 소리.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오라, 우리도 언젠가 낙엽이 되리라. "
그렇다, 가을은 어두운 죽음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계절이다.
느높은 하늘아래 과일들이 붉게 익어가고,
말들이 살찌는 계절만이 가을이 아니다.
그것들을 그냥 바라보며 자위하고,
비좁은 서재에 앉아서 독서삼매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계절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계절이 가을이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 실린 죽음을 앞에 둔 한 사형수에 대한 글을 읽고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
한 사형수가 교수대를 향한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다가, 그만 발을 헛딛어
그 자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 하마터면 죽을뻔 했잖아 ! " 하고
그는 소리쳤다. 그것은 웃고만 넘길 수 있는
농담만은 아니었다.
가끔 사람들은 "당장 죽어도 아무런 미련은 없다"는
말은 쉽게 내뱉는다. 그러나 막상 죽음 앞에 서면
단 일초 일분이라도 더 살고 싶은 것이 인간들이다.
"원하시면 언제든지 불을 끄십시오
나는 그대의 어둠을 알고
그리고, 그것을 사랑할 것입니다"하며
타골처럼 죽음을 노래 할 도인들은
이 세상에 별로 흔치 않을 것이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인생을 굵고 짧게 살겠다"는
철부지 없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런 삶이 무엇을 뜻한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남자가 60세를 넘기면
결코 짧은 수명은 아니었다. 회갑, 진갑잔치를
벌려서 축하할 만한 장수로 생각되었다.
나는 현재, 직계인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작은 형의 수명을 합산해서 계산한
평균나이보다는 많은 수명을 누리고 있다.
아버지는 전쟁통에, 형은 지병으로 일찍 돌아
가셨다. 그러나 천수라는 것이 별도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인명재천(人名在天)이라고 하늘이 내려 준 수명이
천수 일 것이다.
나는 이제 불혹의 나이,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덤으로 이순의 나이를 살고 있다.
이순의 나이가 무엇인가 ? 무슨 소리를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이순의 나이다.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바람부는대로 구름에 달 가 듯이 자유롭게 사는 나이다.
일본작가 아야꼬처럼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는 계로록(戒老錄)이나 한가하게
쓰고 있을 나이가 더이상 아니다.
그녀의 주장처럼 노인이란 지위도, 자격도 아니라면
특별히 생각하며, 준비와 새로운 각오로
시간를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년(晩年)의 나이란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허허 벌판에 나가, 혼자서 마음껏 딩굴고
뛰어다니는 나이다. 그러다 간혹 지치면,
바위에 걸터 앉아 긴 한숨를 몰아 쉬면서
황홀한 석양를 바라보며 "귀거래사" 라도
한 수 읊어 볼 나이다.
예수는 천국은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들어 갈 수도, 맛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이에 더해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노년을 천국으로 살아가는 비결이 숨겨져 있다.
노년은 어린이처럼 사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이 현재만을 살아 간다.
어제 코피를 흘리며 싸웠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 머리통을 깨고 싸우면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된다.
철없이 순수하고 순진한 삶을 사는 것이 어린이들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
과거에 대한 후회스런 기억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몸과 마음이 돌처럼 굳어지고 딱딱해 지는 것이다.
죽은 시체를 닮아가는 과정이다.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퀴불러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로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20세기 100대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평생동안 죽음을 앞둔 수천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모은 베스트셀러 "인생수업" 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만나 보았던 죽음직전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후회했던 것은
"인생을 그렇게 심각하게 사는 것이 아니었는데..."
였다고 한다. 돈이나 명예를 두고 후회하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
-중략-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 꽃도 많이 꺾으리라.
-나딘 스테어(85세, 미국 켄터키 주)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에 실린 글.
나이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 마음으로 껴안은 것이다.
이 가을에는 나도 어린이처럼, 그리 살아 볼 것이다.
박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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