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답게, 제비꽃처럼
창조, 그 말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세상에 창조되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창조적 사고, 창조적 적용, 창조적 실천 등 가장 뛰어난 시도에 창조라는 말을 붙이기를 즐겨한다. 그만큼 창조는 최초의 상상이며, 유일한 시도이다. 성경은 모든 창조의 기원을 하나님께 돌린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교회는 전례력을 제정하여 지켜왔다. 이를 ‘하나님의 달력’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절기인 창조절은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그 본래의 뜻에 따라 보호하여, 온전하게 다음 세대에 전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말 그대로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이다.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자원은 미래 세대에게 빌려온 것’이라고 말들 하지 않는가?
세계교회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오래되지 않다. 1983년 캐나다 뱅쿠버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6차 총회는 처음으로 ‘창조질서의 보전’의 문제가 제기하였다. 이미 세계교회의 주요한 관심사였던 ‘정의와 평화’와 함께 창조질서가 주요 이슈로 부각된 것이다. 특히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엄청난 재앙은 창조세계 파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공동책임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제7차 총회는 그 주제를 ‘성령이여 오소서-창조세계 전체의 혁신’으로 정함으로써 분명한 지평을 열었다.
창조절은 그리스도교 2천년 역사 중 가장 최근에 제정된 절기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성령강림절 후반부를 왕국절(8월 마지막 주일부터)로 지켜왔지만, 9월 첫 주일부터 창조절로 이름을 붙이고, 이를 지키려는 교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직은 세계교회가 공인한 절기는 아니지만 이러한 적용과 참여를 통해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신학적으로도 창조절은 삼위일체 절기의 완성이기도 하다.
창조절 제정에는 그만큼 우리 시대가 부닥치게 된 현실적 고민이 담겨있다. 지금은 환경과 기후문제가 일반화되었지만 우리 한국사회가 환경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독일의 녹색당이 1980년대 소수정당에서 이제 주(州) 정부를 차지할 만큼 정국의 주도권을 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불안한 환경을 만들어 준 것도 영향을 끼쳤다. 그만큼 핵발전소 등 환경재앙에 대해 세계가 점점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중이다.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가 공통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뿔뿔이 ‘제 몫 찾기’정도로 치부되는 현실이다. 개발에 급급한 거대 자본과 국가 주도의 공권력에 맞서서 쑥부쟁이와 도룡뇽, 갯벌과 습지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극히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작은 위험의 가능성에도 크게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의 존재 때문에 우리 사회의 안전지수는 조금씩 높아지는 있다. 사실 이 정도의 문제일망정 자신의 삶터에서 예민하게 반응하고, 대안을 찾아온 눈 밝은 선구자들 덕분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사과나무와 떡갈나무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며,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제비꽃은 제비꽃처럼 피면되는 법이라고 말하였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소로우의 일기>에서). 그가 말하는 자연과 환경의 문제는 바로 인간의 문제요, 고유함과 존엄에 대한 이야기임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선 땅인 지구공동체의 불안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창조절은 그런 생명의 위기에 눈을 뜨는 시간이다. 자연의 신음소리와 그들이 보내오는 민감한 위기신호에 ‘들을 귀’를 여는 기회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날마다 창조절이다.
송병구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