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전성시대
아파트 베란다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자전거에 눈길이 갑니다. 작년 10월에 이사를 해서 자전거를 놓아둔 이래 단 한 번도 타지를 않았으니 자전거 부품이 모두 녹슬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7년도에 어머니가 나이 먹은 아들을 생각하고 자전거를 선물해 주신 것인데 너무 홀대를 해왔습니다. 이제 날씨도 선선해졌으니 열심히 자전거를 타 볼 요량을 해 봅니다.
자전거를 멀리한 데는 여러 가지 핑계가 있습니다. 우선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가장 컸지요.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자전거를 타겠다는 결심만 굳게 갖는다면 자전거를 못 탈 이유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전용도로까지 나가는 일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자동차를 헤치고 몇 번의 신호등을 건너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목을 잡아 버립니다. 마지막 핑계는 조금 생뚱맞긴 합니다. 4대강 사업 때문인데요,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강을 따라 온통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일에 부아가 났던 겁니다. 하필이면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자전거 도로라니!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는 일이 썩 유쾌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자전거를 타지 않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자전거가 생활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게 자전거는 운동수단입니다. 그러니 시간도 따로 내야하고, 전용도로까지 나가야 하는 일이 번거로운 것입니다. 만약 자전거를 타고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자전거와 늘 동행하겠지요. 실제로 자전거의 역사는 레저용이나 스포츠용 이전에 근거리 교통수단이 늘 먼저였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전거를 기가 막히게 잘 이용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주로 유럽의 나라들이지요. 네덜란드는 자전거 교통 수송 분담률이 43%가 넘습니다. 이웃나라인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시티 바이크(City Bike)제도를 운영해서 시민들이 도시 내에서는 어디에서나 편리하게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뮌스터시는 보다 적극적입니다. 인구 27만 명에 자동차 보유대수가 17만대입니다. 그런데 도시 전체의 자전거대수는 30만대입니다. 자전거 수송 분담률이 35%가 넘습니다. 이렇게 자전거가 도시 교통수단의 대세가 되면서 뮌스터시는 효율적인 도심기능과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들 유럽의 도시들은 자전거 이용자가 늘면서 교통사고율이 줄어들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서울에도 천호대로에 자전거 전용차로가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전거 전용도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자동차 운전자들은 좁아든 차선을 놓고 불평했습니다. 결국 자전거도로는 흐지부지되고 말았지요. 뚜렷한 정책 방향과 시민들의 의식변화가 선행되지 않는 전시행정의 전형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모험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합니다. 자동차 위주로 교통 시스템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울 4대문 안 도심 도로에 자전거 전용 차로를 만들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오랜만에 듣는 기쁜 소식입니다. 하지만 진짜 자전거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달릴 수 있을까요? 면밀한 준비와 시민들의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지 않고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 시내를 자전거를 타고 마음껏 달리는 자전거 전성시대가 열린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입니다.
이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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