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두 얼굴
성서 속의 사도 바울도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대단히 교만하고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지요. 그러면서도 그 스스로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착하고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던 바울은 비로소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자신의 깊숙한 내면에 응어리져 감추어져 있던 흉측한 자아의 위선적인 모습을 영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흘 만에 다시 눈을 뜬 바울은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그 괴물을 몰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영적인 싸움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 바울은 두 얼굴을 가진 자신의 이중성을 이렇게 탄식하며 고백했습니다.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18,19. 공동번역).
본문의 바울은, 자신의 ‘마음’은 선을 추구하지만 ‘육체’에 선한 것이 들어있지 않기에 선을 행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교리를 통해 본문을 읽는 사람들은 바울이 말하는 ‘육체’를 ‘원죄에 사로잡힌 옛 사람’으로 보려하지만, 교리의 전제를 내려놓고 본문을 대하면 자연스럽게 ‘육체적인 욕구’와 ‘하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의 갈등으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얼굴을 갖고 살던 시절, 즉 바울이 본능적 욕구에 따라 살면서도 하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처럼 위선의 탈을 썼을 때는 아무 갈등 없이 살 수 있었는데, 예수님을 만나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나니 그것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며, 이웃을 가슴 아프게 만드는 죽음의 길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헐크, 이제는 내보내는 게 어떨까요? 드라마 속의 데이비드 배너가 헐크를 내보내고 진정한 자기, 연약하고 평범한 자아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듯이, 우리도 화려한 허상을 좇는 ‘내 안의 괴물’을 내보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셨듯이, ‘내 모습 이대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면 어떨까요?
류상태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