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과 바람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인류의 지난 역사는 천재적인 이야기꾼들이 이끌어 왔다.
그런 면에서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이야기꾼 중 한 분이다.
신약복음서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60여 편의 아름다운 영적인 우화들이 나온다. 이들은 지난 2천년 동안 인류가 가장 많이 읽었고 또 인류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이야기들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이야기꾼은 이솝이다.
이솝은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에 살았던 한 노예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생 350편 이상의 우화들을 주로 동물들을 주제로 써서 남겼다.
이들 또한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어린이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사로잡았던 이야기들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은 감성적이고 영적인 동물이다.
아니 인간 속성의 90 % 이상이 종교, 예술, 사랑 등 비이성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인류의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아도 그렇다. 인류의 고대 문명은 이집트 나일 강,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 강, 인도 인더스 강, 그리고 중국 황하의 4대 강변에서 일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강변들은 천재적인 이야기꾼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리스 로마 신화, 희랍신화, 이집트신화, 중국의 신화 등 수많은 이야기들을 창조해 냈고, 이들 신화들이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이끌어 왔다.
과학 없이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어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이는 행복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 인간들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즐기는 동물이다.
이솝우화 중에 ‘해님과 바람’이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감성적인(?) 해님과 이성적인(?) 바람은 평소에 마주치면 누가 힘이 더 센가 하는 문제를 두고 늘 다투곤 했다.
"내가 한 번 힘을 모아 입김을 불면 온 세상이 무서워서 벌벌 떨거든, 그러니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다는 것이 아니겠어?" 하고 바람이 입버릇처럼 으스대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거야. 이 세상에는 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또 많이 있거든. 이 세상에 밝은 빛과 따뜻한 햇볕을 쪼이는 것은 네가 하지 못하는 일이잖아 " 하고 해님이 응수를 하곤 했다.
하루는 성격이 조급한 바람이 해님에게 더 이상 말다툼만 할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를 내자고 제안을 했다. 내기에서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을 형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마침 아래를 내려다보니 외투를 걸친 한 나그네가 벌판길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좋은 수가 있다. 저기 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로 하자"했다.
바람이 먼저 게임을 시작했다. 갑자기 차가운 북풍이 몰아쳤다. "이거 웬 날씨가 이렇게 사납담"나그네는 외투자락을 더욱 단단히 거머쥐고 걸었다.
이번에는 해님이 뜨거운 햇볕을 내리쬐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그네는 "아아. 덥다" 하며 외투를 벗었다.
언제 읽어도 지혜가 보석처럼 번쩍거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성적인 관점에 이 글을 꼼꼼히 읽어보면 해님이 지혜로워서 이긴 게임이 아니라 바람이 경솔하고 오만해서 패했던 게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로 "먼저 적을 알고 나중에 자신을 알게 되면 전쟁에서 백전백승한다."라는 손자의 병법을 바람은 몰랐던 것 같다. 바람이 게임에서 이기려면 자신의 장점을 과신할 것이 아니라 해님의 장단점에 대해서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했었다.
둘째로 때의 선택과 게임방법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이야기에 비추어보아서 게임을 했던 때가 이른 봄의 한 낮 시간 같은데 시간을 바람에게 유리하게 택하던지, 옷을 벗기는 것 보다는 옷을 입히는 내기를 제안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셋째로 바람이 무기 선택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에는 매서운 북풍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서풍, 따뜻한 남풍, 희망찬 동풍도 있다. 북풍대신 따뜻한 남풍을 사용했더라면 이기지는 못했더라도 최소한 비기는 게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수는 ‘천국은 어린아이 마음이 아니면 경험할 수가 없다’고 가르쳤다. 우화 또한 어린아이 마음을 가지고 읽어야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지혜의 진수를 맛볼 수가 있다.
잠시 어린아이 마음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읽어보니 진리가 너무 쉽고 단순한 곳에 숨어있는 것 같다.
버지나아 숲 속에서
박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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