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에 산 그림
돌섬 바닷가를 걷다 보면 횡재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떼로 몰려다니던 물고기들이 파도에 떠밀려 백사장위에서 퍼덕거립니다. 태풍이 몰아다준 백합을 차떼기로 만날 때도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돌섬을 걷다가 화가의 그림을 1달라에 사는 횡재를 했습니다.
밀물이 찰랑거리며 젖어드는 비치를 걷고 있었습니다. 백인 노인이 접시처럼 생긴 바테리 탐지기로 모래위를 흝으며 다닙니다. 하도 진지하게 보여 말을 걸었습니다.
“노인장은 모래속에 숨어있는 황금덩이를 찾고 계신것 처럼 아주 진지하시군요?"
“모래속에 금괴라도 숨어있을까 해서 찾고있답니다. 혹시 압니까? 그 옛날 식민지시절 영국으로 금괴를 싣고 가던 배가 파선당하여 바닷가로 밀려온 금괴가 모래속에 파뭍여 있을지 말입니다. 그놈만 걸리면 백만장자가 될텐데...하하하하”
장군 멍군으로 주고받는 농담이지요. 노인이 찾고 있는 건 금덩이가 아니라 녹슨 쇳조각 입니다. 고철장사가 아닙니다. 맨발로 백사장을 걷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쇠붙이를 주워내고 있는 겁니다. 금덩이를 캐내는 사람들에게 비할 것 없이 고마운 분이지요. 계속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망부석처럼 앉아있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앞으로 바다새들이 하얗게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턴(Tern)과 파이핑 플로버(Piping Plover)입니다. “떠웅떠웅”울어댄다고 해서 턴(Tern)입니다. “삐삥삐삥”소리를 내고 다녀서 파이핑(piping)입니다. 덩치가 비들기보다 조금 작아보이는 턴은 하얀깃털에 빨간 부리를 갖고 있는 몸매가 제법입니다. 뒤로 살짝 빗겨져 내려간 검은 머리는 비행기 승무원아가씨의 모자처럼 멋집니다.
파이핑풀로버는 돌섬에서 제일 작은 하얀새입니다. 수백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귀엽다고 쫓아가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 찬란한 에어쑈를 펼처줍니다.
턴과 파이핑은 같은 하얀색이라 잘 어울려 다닙니다. 이놈들이 떼로 몰려오면 비치는 하얀무도회장이 되버립니다. 망부석남자의 발치 끝으로 아장아장 걸어다닙니다. 남자도 머리를 하얗게 비운 모양입니다. 하얀색으로 보여 새들이 무서워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니까요. 내가 심술굳게 뛰어들자 새들이 날라가 버렸습니다. 놀란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수작을 걸었습니다.
“나는 이마을 노인아파트에 사는 은퇴 노인입니다. 이름은 Lee, 73살입니다. 보아하니 젊은 양반같은데 지금 무얼 즐기고 계신지요?”
미국사람들은 이름과 나이를 대주면 금방 친해집니다.
“저는 뉴욕 북쪽 용커스에 사는 48살의 화가입니다. Gery라고 합니다. 돌섬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미녀들을 그리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림은 그리지 않고 새들하고 장난만 하고 있군요”
“벌써 그렸지요. 그것도 대작을 말입니다. 제 작품을 한번 보시렵니까?”
게리가 일어나서 발아래 펼쳐있는 모래를 가리켰습니다. 모래위에는 막대기로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선들로 어지럽습니다. 살펴보니 집도 있고 사람도 보입니다.
“이건 고향의 어린시절 땅바닥에 그려놓고 즐기던 어린애들 그림 아닙니까?”
“그래요. 모래위에 그린 애들 그림입니다”
게리씨가 캔버스를 설치하고 데쌍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풍광을 둘러봤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는 비치에서는 수영복을 입은 남녀들이 딩굴고 있었습니다. 비치옆으로 걸어다니는 보드워크에서는 케이불 TV HBO가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돌섬은 촬영장으로 유명합니다. 팔등신 미녀들이 망사수건을 흔들며 CF촬영을 합니다. HBO의 단골촬영장입니다. 4년전 돌섬에 이사온 첫 해에는 1940년대의 "아틀란틱의 낭만“을 찍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미국판 용궁이야기“를, 지난해와 금년에는 ”Empire Boardwalk"을 만들고 있습니다. 촬영세트가 어마어마합니다. 수십대의 대형차량이 동원되고 100명의 배우들이 몰려옵니다. 동네만한 천막을 세워놓고 한달 넘게 촬영합니다.
“세트로 세워놓은 가건물들이 백악관처럼 아름답구나!”
감탄하던 게리씨는 탄식했습니다.
“그래봤자 모두가 모래위에 세운것들인 것을! 파도에 쓸려가 버리고 태풍이 불면 날라가 버릴것들인데”
게리씨는 캔버스를 버리고 모래위로 달려갔습니다. 모래위에 Empire Boardwalk를 그렸습니다. 해수욕을 즐기면서 딩구는 남녀들도 그려 넣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그린 모래위에 그린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겁니다. 썰물이 몰려오면 모래위의 그림들이 썰물따라 사라져 버리겠지요. 그걸 기다리고 있는거지요”
“그림이 멋지군요. 이 그림을 내가 갖고 싶군요”
“난 전업화가라서 공짜로는 안줍니다. 사가세요. 원 달라에 팔겠습니다”
그래서 사버렸습니다. 내가 돈 주고 산 첫 번째 그림입니다. 1달라에 산 복권이 대박으로 당첨된 기분입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자랑했더니 돈만 날렸다고 핀잔입니다. 둘째 딸 은범이는 달랐습니다.
“아빠 멋져요. 우리 내일아침 1달러짜리 그림 보러 바닷가로 가요”
다음날아침 가보니 그림이 없어졌습니다. 그림만이 아닙니다. 해수욕을 즐기던 비키니 미녀들도 가버리고 없습니다. HBO촬영팀은 철수하느라 세트를 부수고 있습니다. 딸이 탄식했습니다.
“아빠, 간밤에 썰물이 나가면서 모래위의 그림들을 모두 쓸어가 버리고 말았어요”
“그래서 1달러짜리 비치그림이 멋진거다. 그림속에 있던 해수욕아가씨들도 가버리고 HBO팀도 철수하고 있다. 그러나 캔버스역활을 해준 모래 바다 파도 하늘 바람새와 꽃나무는 그대로 있지 않느냐? 예술이건 부귀이건 인간들은 모두가 가버리지만 자연은 영원하다. 그래서 자연에다 그린 1달러짜리 비치그림이 위대한 것이야”
우리부녀는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턴과 파이핑새가 하얀날개를 펄럭이면서 날라오고 있었습니다.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이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