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한 여름철, 으레 느티나무 아래에서 매미처럼 울어대던 아이들이 사라졌다. 작은 시골교회도 방학 때면 여름성경학교로 북적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돌아보니 꿈만 같다. 여름성경학교 뿐이랴! 청소년들의 수련회도 한 물간지 오래다. 더 이상 아이들은 없고, 농촌교회는 그나마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힘에 부친다.
행여 수련회를 갈 만한 청소년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데리고 갈만한 수련회가 마땅치 않다. 자체 수련회는 언감생심 밑그림을 그리기도 벅차다. 스마트 폰을 손에 쥐고 온갖 번쩍이는 게임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교회의 입장에서 남들이 다 하는 수련회를 건너뛰기도 쉽지 않다. 그냥 ‘말씀 중심’을 내세운 청소년 대형집회의 느끼한 유혹에 넘어갈까?
올해로 꼭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작년과 올해 청소년 수련회에 2박3일 내내 꼬박 동행하면서 고난모임이 주관하는 ‘평화캠프’에 적잖이 녹아들었다. 애초에 이름부터가 차별적이다. 주관하는 단체의 속성상 ‘남’ 다르다. 그래서 열이면 열, 보수적 풍토의 교회들이 처음에 문을 두드리기가 조심스럽다. 그나마 있는 신앙을 장독 째 깨뜨릴까 조심스럽다. ‘나’부터 그랬으니까!
올해 주제는 ‘원피스’였다. 하나의 평화, 하나의 퍼즐조각이란 의미다. 999개의 퍼즐을 맞춰도 ‘단 하나’가 부족하면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의 소중함을 배우며 평화를 찾는 일을 배운다. 주제처럼 모든 참여자들은 존중받는다. 멀리 창원, 주문진, 평창, 부여, 강화, 홍천, 파주, 의왕 등에서 온 19개 교회 138명 학생에, 교사가 50여명이 훌쩍 넘는다. 이미 기획과 준비과정에서 참여한 교사가 35명, 교회에서 함께 한 인솔교사가 열 명 남짓 그리고 몇몇 젊은 목회자들이 함께하였다. 이렇듯 ‘물 반, 고기 반’인 교수학습 구조에서 학생들 곁에는 늘 도우미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보기에도 행복하였다.
듣자니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충분히 즐거워하더라. 취지가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한다’고 하였다. 이미 6년 째 계속 출석하는 교회도 있었고, 학생이 자라서 이젠 교사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장소가 장소니만큼 대안교육공동체인 산돌학교의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분위기로 가득하였다. 농촌교회가 공급하는 유기농 식단은 물론이다. 10년을 한결같이 준비하고, 진행해온 젊은 동역들이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물어보았다. 올해의 경우 파커 팔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몇 개의 개념을 빌려와서 신학적 구조를 끌어냈다고 한다. 이를테면 ‘공감, 공유, 공존, 마을, 셀프메이드’와 같은 단어들이다. 이것을 토대로 3개의 공과를 구성하고 얼개를 짠다. 그리고 기획팀에서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여 뼈대를 붙이고, 상상력으로 포장한다.
완성품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교재는 충분히 토론할 만하다. 말이 많아서 설득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접근 때문에 무뚝뚝한 소년들조차 말을 섞는다. 준비과정에 참여한 이들은 결과물을 보면서 처음의 어설픈 실마리가 예상치 못한 완성도를 낳았다며 만족해한다. 실은 엉뚱한 결론이 나와도 역시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큰 무대의 공연을 준비하듯, 분수 이상의 낭비를 한다.
특히 올해는 ‘셀프메이드’가 흐름을 이끄는 열쇠 말이었다. 예배와 찬양, 분반성경공부 외에 여섯 차례 셀프메이드 모임이 있었다. 9명의 전문 선생님과 함께 그룹을 지어 랩을 만들고, 사물을 두드리고, 공방, 미술작업, 켈리그라프, 다큐, 영화, 사진 그리고 연극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인 마을잔치에서 선을 보였다. 그 기대이상의 성취도는 짧은 지면에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이들 입말로 ‘고퀄, 꿀잼, 졸멋, 이예압’이랄까?
작년 주제는 ‘허그’였다. 통일에 대한 뻔한 당위성보다 분단으로부터 무엇을 배울까를 고민하던 중 나온 결론이었다고 한다. 해마다 깊은 성찰의 결과로 ‘평화캠프’는 지금도 성숙하는 중이다. 그들의 원칙은 ‘절대 의도된 시나리오대로 아이들을 몰고 가지 않기’였다.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수련회의 마침은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전도사 형들과 누나들이 고맙다. 소년소녀의 눈높이에서 온갖 끼와 진지함이 버물리고, 어우러져 농촌과 도시의 젊은이들은 한 여름 매미처럼 온 종일 웃고 있다. 작년에 평화캠프에 참석한 중3 여학생이 집에 와서 이렇게 말했단다. “사람대접 받은 것 같아요”. 학교든, 군대든, 정말 인간대접, 평화교육이 필요한 시절이다.
송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