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목사는 모순이다.
흔히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부자가 될 수 있다”라고 잘라 말한다. 신앙의 양심상 이런 가당찮은 주장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어쨌든 남달리 축복받아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무턱대고 부정할 수도 없다. 실제로 하나님은 물질의 축복을 통해서 바른 사역에 사용하라고 주문하시기도 하니까...
하지만 하나님께 축복받으면 받을수록, 은혜를 입으면 입을수록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다름아닌, 이른바 ‘주의 종’이라는 목사다. 주께서는 ‘가난한 자’로 세상에 오셨고, 가난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생명을 바치셨으며, 가진 자는 반드시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엄히 명령하셨다. “세상에서 굶주리고 헐벗은 자를 섬기는 것이 곧 나를 섬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목사가 정녕 주의 종이라면 당연히, 그리고 기꺼이 가난한 자가 돼야 한다.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주는 돈을 받아서 생활하는 목사가 정작 교인들은 가난에 허우적거리는데 자신은 VVIP 신분을 누리며 부자로 호사를 누리며 산다는 것은 말그대로 넌센스이며, 주의 종으로 맡은 역할에 대한 엄연한 배역이다.
돈 많은 동네의 교회, 또는 교인이 많아 재정이 넘치는 대형교회일지라도 막상 교회 안에는 가난의 고통에 신음하는 교인들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의 피땀어린 헌금을 받아 생활하는 목사가 남달리 부유하게 살고있다면, 그는 이미 종교를 빙자한 장사치일 뿐 결코 ‘거룩한’ 주의 종이 될 수 없다. 신성을 가리키는 ‘거룩’의 의미 자체가 종에게 전이되는 순간, ‘거룩한 종’은 가난과 겸손, 그리고 청빈한 삶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룩’은 신성神性일 뿐, 사람이 결코 따를 수 없는 불가근의 속성이라고 변론하려는가? 하나님이 친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하신 말씀은 ‘신의 농담’이었던가?
주변을 잠깐만 둘러보면, 가난해서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과 몸이 아픈데도 돈이 없어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해 병을 잔뜩 키웠다가 끝내 죽음을 맞는 사람들, 반평 쪽방에 갇혀 살면서 여름에는 찌는 더위에,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에 벌벌 떨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학비가 없어서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 심지어 돈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이른바 세상의 ‘작은 자’다. 주께서 그들을 정성껏 돌보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을 섬기는 것이 곧 나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니라”(마25:44-45)
강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