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만난 산타크로스
1
워싱톤의 여름 더위는 실로 살인적이다. 에어컨디셔너 가 없던
시절에는 "미국의 전쟁은 여름에 일어난다. "는 말이 전해 올
정도로 불쾌지수가 높고 짜증스런 날씨다.
그렇게 무더운 지난해 한 여름날 오후였다.
"팅똥댕, 팅똥댕.." 운전중에 핸드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뜻밖에도 아들 제임스였습니다.
‘갑작스레 돈이 필요한 모양이구먼!’하고 생각하며
"또, 무슨일야?"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아빠, 경찰차 두 대가 집에 와서 아빠를 찾고 있어."
많이 놀란 목소리였다.
경찰이라는 말에 나도 덩달아 놀라
얼떨결에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내가 죄지은 일이라도 있나"
오금이 졸여오고 머리카락이 쭈빗 섰다.
"잠간 기다려"아들이 전화기를 한 경찰관에게 바꾸어 주었다.
"헬로 빌 박이십니까?
저는 페에팩스 카운티 경찰관입니다."
"........ ......." '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솔직히 대답해 주십시오."
긴장한 목소리였다.
"오늘 혹시 지갑을 도난당한 적이 있습니까?
오후에 어떤 분이 선생님의 지갑을 길 가운데에서 주워
경찰서에 신고를 했습니다. 혹시 강도라도 당하지 않았나 해서
지갑 속에 남아있는 명함의 주소를 보고 연락도 없이
집으로 급히 찾아왔습니다."
"............ "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황급히 뒤 호주머니를 만져 보았다. "어어" 지갑이 없었다.
"그런 적은 없습니다만......, 잠시 확인해 본 후에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크레딧 카드를 사용한 후에 운전수 옆 좌석에 놔두었을 지도 몰라."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서류더미를 헤치며 지갑을 찾아보았다.
눈에 띄지 않았다.
콘소울, 글러브 박스, 의자 밑과 옆, 뒷자석, 트렁크 속을
여러 차례 샅샅이 뒤져 보았다. 역시 없었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크레딧 카드를 사용했던 곳이 어디지? "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맞아, 동네 주유소에서 크레딧 카드로 게스를 구입해었지."
그리고 허둥지둥 약속시간에 쫓겨 지갑을 자동차 본넷 위에
두고 차를 몰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경찰관은 "그 주유소의 이름과 장소, 게스를 넣은 후의 향했던 목적지,
길 이름과 방향, 지갑에 가지고 있었던 크레딧카드의 숫자, 현금액수,
중요한 서류..등" 을 상세히 물었다.
"크테딧 카드가 두 개,
현금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350불정도 있었던 것
같다"고 대충 대답을 하며
"지금 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으니
내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경찰관은 사건의 성격상 그렇게 기다릴 수가 없다.
대신 한 시간 후에 셀 게스스테이션에서 만나자" 고 약속을 한 후
전화를 끊었다.
2
황급히 차를 몰고 집에 들렀다.
몇 백 불의 현금쯤이야 문제될 것이 없지만
고액한도의 크레딧카드가 걱정됐다.
"누군가 내 운전면허증과 함께 가져갔다면
이미 수만 불을 인출해 갔을 지도 모른다" 덜컥 겁이 났다.
만약을 대비해서 크레딧 카드회사 정보를 챙겨
시간에 맞추어 약속장소를 향했다.
게스스테이션 주차장에 경찰차도 경찰관들의 모습도
보이질 않았다. 은근히 당황해 하며
29번 도로 북쪽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도로변 교회주차장에 빈 경찰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머리를 두리번거리며 경찰관들을 찾았다. 아들과 경찰관 두 명이
양쪽 도로변, 도로 중앙분리대에 나누어져 머리를 숙이고
발길로 잔디를 헤치며 샅샅이 뒤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를 보자, 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주차장에 있는 내게로 다가왔다.
기온이 화씨 백도를 웃도는 푹푹 찌는 오후 2시쯤,
두 경찰관의 옷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얼굴에서는
구슬 같은 땀방울들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한 경창관이 미안한 듯 한 얼굴로
"한 시간 이상을 셋이서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오늘따라 바람이 불어 멀리 흩어져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아직 찾지 못한 것들은 아마도 더 멀리 날아가서 수풀들 속에
묻혀있는 듯합니다."
"우선 지갑을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하며
자동차바퀴에 수십 번씩 밟혀 납작하게 찢겨진
지갑을 내 손에 건냈다.
운전면허증은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찌그러진 크레딧 카드 두 개,
그리고 현금 250불정도, 찢겨진 명함과 맴버쉽 카드들이 들어있었다.
"휴...", 일단 안심이 되었다.
"100 짜리 지폐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있으시면
아들과 함께 주위 수풀 속을 더 찾아보십시오. 다른 경찰관들이
두 분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 두겠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정말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지갑에서 50불을 꺼내 경찰관들에게 내밀었다.
"저는 이미 잃어버린 돈입니다. 이 돈은 복권이 당첨되어서
번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께서 저녁이라도 함께 하십시오."
경찰관들은 정색을 했다.
"성의는 고맙지만 돈을 직업상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들은 경찰관으로써 마땅한 의무를 다 했을 뿐입니다.
잃어버린 돈은 오늘 좋은 일에 자선을 했다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나와 악수를 나누고 두 경찰관들은 떠났다.
아들 제임스 에게 "더운 날씨에 도와주어서 고맙다." 는 말을 남기고...
3
집에 돌아오는 차 속에서
어린 시절 경찰관들에 대한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가 피식 웃었다.
어린 우리들에게 경찰관은 늘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끔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거나 때를 쓰고 울 때마다
어른 들이 보검처럼 휘두르는 말이
"순사가 너를 잡으러 온다" 는 협박이었다.
그때마다 끽소리 한 마디 못하고 순종을 했고,
울던 울음을 뚝 멈추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경찰차가 옆에 지나가면
얼떨결에 멀쩡한 자동차속도를 줄이기도 하고,
경찰관들과 마주칠 때마다 괜스레 마음이 움찔해지곤 한다.
사람의 마음은 뱀처럼 간교하다. 변소에 들어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이 인간들의 마음이다.
은근히 잃어버린 백 불짜리가 아쉽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속물근성......,
" 돈에 대한 인간들의 욕심은 바닥이 없는 바다와 같다.
명예도 양심도 빠져서 떠오르지 않는다" 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명언이 부끄러움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파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청정했다.
어! 벤자민 프랭클린 얼굴이 새겨진 백불 짜리 지폐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서편하늘에는 하얀 뭉개 구름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역시 워싱톤의 8월 더위는 살인적이다. 전쟁이 일어날 만도 하다.
그 무더위에 만난 싼타크로스.
무척 행복한 오후였다.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