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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14]
 
 
 
     
 
 
 
작성일 : 14-07-31 19:59
   
중이 제머리 못깎을 때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60  


중이 제머리 못깎을 때


시드니에 몇 분의 스님들이 있는데 나는 비교적 그들과 가깝게 지낸다. 솔직히 말하지만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교제를 나누기에는 목사 보다는 스님이 훨씬 편하고 좋다. 최소한 스님들에게는 대부분의 목사들처럼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똥폼 잡는 것은 보기 힘들다.


특히 나는 스님들 중에 두 분의 비구니 스님들과 더 가까운 편인데 늦게 출가한 A 스님은 누님 같이 느껴지고 어려서 출가한 B 스님은 동생 같이 허물이 없다.


A 스님은 나보다 몇 살 더 먹었는데 행사장에서 아무도 상대를 하지 않아 혼자 않자있는 것을 내가 가서 먼저 인사를 한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그것을 놓고 스님은 “목사님이 먼저 건드렸다.”고 농을 하고는 한다.


사실 나는 스님이 내가 이루지 못한 첫 사랑 닮아서 자주 찾아 갔는데 스님은 내가 자기를 존경해서 찾아오는 것으로 알고 반겨주었는지도 모른다(?). 스님이 가끔 실수로 집사람을 ‘보살님’이라고 불러서 집사람을 짜증나게 만들기는 하지만 하여간에 우리는 같이 식사도 하고 놀러 다니기도 하고 재미있게 지냈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길러 본 후 50이 넘어서 출가한 A 스님과는 만나서는 전문적인 이야기 보다는 나는 교회를 해 먹지 못하고 사는 이야기, 스님은 절이 잘 안 되는 이야기 등 세상 이야기를 많이 한다.


스님은 절 운영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목사님이 드나들어서 절이 잘 안되면 책임 져야 되요.”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절의 문을 닫게 되면 다음에는 절과 교회를 같이 해보자고 했다.



이번에 아내가 한 주간 집을 비운 탓에 모처럼 B 스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평소에 아내와 함께 만날 때는 나눌 수 없었던 선수끼리 할 수 있는 전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굳이 집에서 만난 것은 절에서 만나면 찾아오는 사람,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번거롭고 밖에서 만나면 남의 눈에 들어나고 해서 방해를 받지 않고 대화를 하기 위함이었다.


대화 중에 최근에 세수가 70이 넘으신 A 스님이 건강이 안 좋아져서 손이 떨려서 머리를 깍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소식을 듣고 상대적으로 젊은 B 스님이 자기가 가서 깎아 드리겠다고 했더니 A 스님이 번번이 어떻게 남의 손을 빌리겠느냐고 그냥 머리를 길러서 묶고 지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다른 스님과 함께 만났는데 승복에 모자를 눌러쓰고 나왔는데 모자 밑으로 머리카락이 비쭉 비쭉 나온 것이 보기에 어색하고 안 좋더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라도 스님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지 않으냐?”고 했더니 B 스님은 ”그럴 바에야 아예 가사를 입지 않고 그냥 평복을 입으면 더 자유롭지 않겠느냐? “는 의견을 제시 했다.


그래서 평복을 입고 머리와 수염도 기르고 심지어는 여자까지 취했던 원효나 경허 스님도 있지 않았느냐니까 스님은 ‘그 분들 정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그 분들의 행적만 따라하면서 자신을 합리화 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어느 종교이든 종교인들 사이에서의 차이는 민감한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와 다른 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수준으로 발전한다. 교회 역사에 나타난 숱한 분열이 다 그런 것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던가?


어느 종교이든 나름대로 지켜야할 계율이 있고 하지 말아야할 금기가 있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종교 밖에서는 문제가 안될 것이 그 안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로부터 ‘예수만 믿으면 완벽한 황제’라는 소리를 듣던 청나라의 강희제 시대의 이야기이다. 마태오 리치가 길을 터놓은 이래 당시 청나라 황실에는 다수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이것들이 조용히 지내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강희제가 재상을 시켜 선교사들이 다툼을 멈추도록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재상이 ‘그들은 교리적 차이 때문에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대답 했다. 그러자 강희제는 ‘그렇다면 안 싸우는 척, 화해하는 척 할 때까지 협조하지 마라' 라고 했단다. 마태오 리치 이후에 온 선교사들이 너무 완고해서 제사문제가 같은 데에 타협하지 않아서 결국은 박해를 자초하게 되었다.


신앙 때문에 다른 이들과 차이를 느낄 때 내가 믿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예수의 말씀 밖에 있는지 아닌지가 척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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