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속사람
사람살이 방식을 단순히 이분화하면 ‘높이’를 추구하는 삶과 ‘깊이’를 추구하는 삶으로 나눌 수 있다. 쉽게 높이를 현시적이고 세상적이라고 한다면, 깊이는 내면적이고 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낱낱의 삶의 무게와도 연관을 갖는다. 그렇다고 애초부터 생장점이 다른 것은 아닐 듯하다. 높이와 깊이는 숱한 생의 굴곡과 빈틈을 메우며 어울리는 법이다.
깊이를 추구하는 삶의 형태를 보기로 들면 그리스도교의 수도회와 신앙공동체가 먼저 떠오른다.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발전한 원동력의 하나로 수도원운동을 손꼽았다. 대개 그 출발점은 주후 6세기 베네딕트 수도원부터 잡는다. 이전에도 수도자와 순례자들이 존재했지만, 일정한 처소 없이 생활한 반면 비로소 베네딕트 수도원을 통해 교육과 훈련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수도원의 교과과정은 기도, 공부 그리고 노동으로 요약된다. ‘기도하는 사람이 공부할 때 종교의 미신화를 막고, 공부하는 사람이 노동해야 학문의 우상화를 방지하며, 노동하는 사람이 기도함으로써 직업이 신성시 된다’는 것이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이 노동함으로써 종교가 생활화하고, 노동하면서 공부할 때 노동의 기술화를 수반하며, 공부하는 사람이 기도할 때 성숙을 가져온다. 이것은 베네딕트 수도원이 그리스도교의 깊이와 높이를 함께 일궈낸 방식이었다.
으레 수도원하면 세속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그리스도인의 완덕을 얻고자하는 신앙적 열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수도원(monastery)이란 이름에는 헬라어 ‘monos’ 즉 ‘고독한’, ‘홀로’ 라는 어원이 담겨있다. 세계적인 수도원인 이탈리아 베네딕트 수도원은 산꼭대기에 세워졌고, 이집트 카타리나 수도원은 광야 한가운데인 시내산 아래에 위치하며, 영국이 자랑하는 아이오나 수도원 역시 스코틀랜드의 작은 섬에 자리 잡고 있다. 공통적인 것은 한결 같이 고독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수도사들도 있었다. 탁발수도회가 좋은 예이다. 그들은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재산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구걸하거나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마을과 도시를 순례하며 전도하면서 수도생활을 하였다. 이것은 중세기에 교회와 사제들의 부유한 생활과 타락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프란치스꼬회와 스페인과 프랑스를 바탕으로 한 도미니쿠스회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옷 색깔로 서로를 구분하는데 프란치스꼬는 흰색, 도미니쿠스회는 검은색을 입는다.
내 마음의 기억에 지금도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곳은 독일 남부의 마울부론(Maulbronn) 수도원이다. 국보급의 차원을 넘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 되었다. 1098년 설립된 시토(Cistercian) 수도회에 속한 수도원은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후기 고딕 양식까지 그 연륜만큼 다양한 건축양식을 지녔는데, 가히 알프스 이북에서 최고의 수도원임을 자랑한다.
천 년 전의 수도사들은 다른 유명한 수도원과 달리 동네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울부론 마을 한 가운데에 구중심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기도와 노동 그리고 공부를 통해 심연의 깊음을 추구하였다. 그들이 사는 일상의 공간을 돌아보면서 사람에게는 빛과 어두움, 소리와 침묵, 기도와 노동 모두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높이와 깊이는 모든 사람들의 양면적인 삶의 모습이다. 한편으로 욕망의 실현을 위해 날마다 힘겨운 까치발을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삶이 우려내는 쓴맛을 통해 속사람의 깊음 속으로 두레박을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과연 그 속사람이 누리는 깊음과 충만함이 있는지, 때때로 자문할 일이다.
송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