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실패
팔당마실교회에서 목회하는 조언정목사 내외가 ‘앉은뱅이 우리밀 국수’집을 열었습니다. 식당을 시작하며 드리는 감사 예배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복되고 영광스런 설교 자리였는데 결과적으로 그 날 설교는 실패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는데 그 좋아하는 국수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힘든 마음은 그 날 밤은 물론이고,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마치 피부를 데었을 때 욱신거리는 아픔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과 흡사했습니다. 부끄러움은 아픔이 되었고, 그 아픔을 용납하지 못하는 자존심의 작동이 멈추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그동안 설교는 어느 정도 적절한 준비만 하면 되는지 알았습니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26년간의 목회를 통해서 의식은 그렇게 길들여져 왔습니다. 은혜롭다는 말에 얼마나 나 자신이 속아왔는지 섬광처럼 깨달아졌습니다. 회중들과의 교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요. 솔직하게 말하면 익숙한 것에 대한 익숙한 반응에 속아왔던 것입니다. 회중들과 나는 익숙했습니다. 다루는 말씀에 익숙했고, 말씀이 전해지는 틀에 익숙했고, 삶에 별 무리가 생기지 않도록, 상황을 전제하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변화 때문에 안정적인 삶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하고 말씀을 전하였던 셈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회중과의 교감은 일어났습니다. 문제는 그 반응을 과도하게 부풀려서 나 자신을 그래도 괜찮은 설교자로 공중에 붕 띄우는 착각을 해 온 겁니다.
그런데 ‘앉은뱅이 밀 국수집’ 감사예배에 참석한 회중들은 달랐습니다. 이들에게는 말씀 속에 감춰져 있는 진리를 찾아내 선포하는 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단단하게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자신의 삶을 던져 말씀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삶과 동떨어진 채 말씀 속에 감추어진 진리를 찾아냈다고 눈을 반짝일 이유가 없는 회중들이었습니다. 이들과는 삶속에서 말씀이 얼마나 능력 있게 역사하는지를 함께 확인하고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말씀의 큰 비밀을 찾아낸 듯이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설교가 전개되었습니다. 회중들에게 매우 낯선 상황이 펼쳐진 것이지요. 의아한 듯이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습니다. 예상치 못한 장면 앞에 식은땀이 흘러 속옷이 흥건히 젖었습니다. 소리가 입 속에서 언어가 되지 못하고 엉클어졌습니다. 진땀을 흘리던 설교는 어떻게 끝이 났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실패한 설교였습니다.
하지만 실패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설교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평가는 적절치 못합니다.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는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나 중심적인 인생관이 그리스도 중심의 인생관으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공과 실패라는 기준은 신앙의 핵심에서 한참 벗어난 왜곡된 자기 평가 기준인 것이지요. 그럼에도 설교가 실패했다는 아픈 자의식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은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변화하지 않는 익숙한 설교와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익숙한 회중들입니다. 주님께서 삶이 담기지 않은 내 설교를 보시며 네 설교는 어떤 설교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요. 딱히 대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실패한 설교자의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닐까 그게 두렵습니다.
이광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