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페친 중 한 분이 한 카톨릭 수도회의 작은 예배처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셨다. 아주 가끔씩 들렀던, 추억으로 눈에 익은 제단이 그곳에 있었다. 사진 속 바로 그 제단 위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 그리고 그 말 옆에 놓여 있는 성경말씀 한 구절.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그 말에 시선이 닿은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얼마나 거룩하고, 서늘하고, 위로가 되는 말인가 이 말은.
거룩한 말이다.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는 말은. 인간사의 속됨을 넘어선 거룩함이 이 잊지 않으심에는 있다. 나약한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얼마나 쉽게, 얼마나 자주 망각이라는 수단을 이용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망각은 죄책감을 잊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던가. 망각은 이렇게 인간의 나약함과 같은 의미가 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시다. 그분은 잊지 않으심으로 우리와 다르시고 거룩하시다.
서늘한 말이다.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는 말은. 그는 이 땅의 모든 죄악을 흘려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감춰진 죄악을 똑똑히 보고 계실 것이다. 숨겨진 죄악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그 누구의 시선에도 남아 있지 않을 개인의 죄악도, 역사에서 지워져버렸을 민족의 죄악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무소부재란 어쩌면 본디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위로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는 말은. 모든 원통함의 피눈물을 그는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다. 권력자의 돌아선 등을 속절없이 바라보는 흐릿한 그 눈을 그는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다. 감히 드러나게 드리지도 못하는 외로움의 기도를 그는 결코 흘려듣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게 그분의 잊지 않으심은 위로가 된다. 하나님은 잊지 않으심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며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신 적이 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요 14:26) ‘생각나게 한다’로 번역된 말의 원어는 정확하게는 ‘기억나게 한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니라 잊지 않게 하는 일, 즉 기억나게 하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원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속절없이 잊을 것이다. 가장 잊지 말아야 할 일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말 것이다. 아무리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외쳐도, 결국은 잊고 말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나 나약하기 때문이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 문득, 성령께서는 기억나게 하실 것이다. 모든 것이 기억에서 사라져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성령은 갑작스럽게 기억나게 하실 것이다. 그때 우리의 할 일은 이것이다. 그 기억에 진실하고 용감하게 응답할 것. 그러면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눅 12:6)
이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