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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18]
 
 
 
     
 
 
 
작성일 : 14-07-20 00:00
   
생명의 기독교로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65  


생명의 기독교로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가 아니고 생명의 종교입니다. 죽이는 종교가 아니고 살리는 종교입니다. 무너뜨리는 종교가 아니고 세우는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잘못 헝클어져버린 관계를 바로 잡으려고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선순환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났던 청교도의 후예들인 신신학자들에 의해 역순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힘이 생기자 세상을 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서부를 정복하고 전 세계를 정복한 패권국가가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힘에 큰빗이끼벌레가 서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한국은 특히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대거 미국 신신학을 무비판적으로 배워가지고 돌아와 한국 교회를 물질주의와 세속주의로 뒤덮어버렸습니다. 근거없는 낙관주의와 성공주의가 한국교회의 생명력을 다 빼앗아가버렸고, 기독교적 영성을 다 고갈시켜버렸습니다.



한국교회의 자랑이었고 힘의 원천이었던 '열정적인 기도'를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그 자리를 '자본의 힘'이 차지해 버렸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규모만 클 뿐 실상은 생명 없는 죽은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이대로 건물 짓다가 서구문명의 몰락과 함께 몰락해버릴 것인가? 말기 암 환자 같은 한국 기독교가 다시 사는 방법은 없을까?



별 가능성은 없지만 기독교가 다시 살아날 방법은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문명에서 원래의 본 모습인 '생명의 기독교'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온통 미쳐서 죽음을 향하여 폭주를 할 때, 기독교는 생명신학, 생명목회,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개혁' 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새로운 '종교혁명' 입니다. 막았던 4대강의 보를 터서 다시 강물이 흐르게 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기는 합니다.



영성의 기독교로


기독교는 육성의 종교가 아니고 영성의 종교입니다. 보이는 외적 세계의 종교가 아니고 보이지 않은 내면 세계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어 육적으로 잘먹고 잘살게 해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샘물처럼 솟아나는 그리스도의 영을 불어 넣어 주셔서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의 발달은 점점 사람들을 영혼이 없는 기계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영혼이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나는 왜 존재하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내세가 있는가?" 이런 인간 근본 존재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조차 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없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돈'밖에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돈'만 벌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악랄한 방법으로 탈취해도 좋다는 사고방식은 마귀의 사고방식입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도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행복은 재산순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비인간화와 영성의 고갈로 심한 갈증을 느끼면서 누군가가 자신들의 영혼을 만져주기를 간절히 갈구하고 있습니다. 요즘 서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스님들의 책은 모두 '힐링, 여유, 느림, 쉼'에 관련된 책들입니다. 원래 이런 책들은 기독교의 목사님들이 써야되는 책입니다.



모두다 '돈'을 바라보고 눈이 뒤집혀 있을 때, 기독교 마저도 영혼을 내팽개치고 육체의 안락을 위하여 불나방처럼 돈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한국 기독교가 사는 방법은 세상 가치관인 '육성의 기독교에서 원래 기독교의 모습인 '영성의 기독교'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은 깊은 영성의 샘을 가지고 있는 영성의 종교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의 갈증을 다 풀어주고도 남을 깊은 샘을 더 이상 봉인해 두어서는 안됩니다.



예술의 기독교로


기독교는 기술의 종교가 아니고 예술의 종교입니다. 문명의 종교가 아니고 문화의 종교입니다. 파괴하는 종교가 아니고 보존하는 종교입니다. 모방의 종교가 아니고 창조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로 말미암아 어그러져버린 세상을 바로잡아 하나님의 창조의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원래 이 세상에는 직선이 없었는데, 인간들이 직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곡선의 세상입니다. 인간들은 직선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최초의 직선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인간들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거대한 직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들의 아름다운 심성이 다 파괴되고 감정이 사라진 동물과 같은 본성만 남아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이러한 삭막한 세상에서 교회마저도 덩달아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잡아먹고, 도시 교회가 시골교회를 빨아먹고, 마켓팅 기법이나, 무슨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교회 크기만 키우려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입니다.



기독교는 원래 예술의 종교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보나 보물은 대부분이 불교유산이지만, 전 세계의 문화유산은 거의 기독교의 유산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예술성을 복원해야 합니다.  노래, 춤, 미술, 詩, 연극, 영화, 건축, 패션, 음악, 요리, 책.... 모든 부분에서 최고의 기독교 문화, 예술이 만들어져야 기독교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이 교회 문화, 예술을 따라했지만 지금은 교회가 세상 유행을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지금 물질문명의 시대에서 점점 문화, 예술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데 한국 기독교는 자꾸 과거로 가고 있습니다.



작은 기독교로


기독교는 거대한 종교가 아니고 작은 종교입니다. 힘을 과시하는 종교가 아니고 삶의 종교입니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종교가 아니고 고아와 과부의 종교입니다.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한 종교가 아니고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고난받는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기독교를 거대하게 만들어서 그 힘으로 무엇을 하려는(그것은 제자들의 생각이었다)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이 땅에서 썩어지는 밀알이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이전까지는 교회라 하면 '지하교회' 였고 아주 작은 가정교회였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는 모두 작은 교회이며 가정교회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마가네 집 다락방에 있었고, 빌립보교회는 루디아의 집에 있었고, 라오디게아교회는 눔바의 집에 있었고, 골로새교회는 빌레몬의 집에 있었고, 고린도교회는 가이오의 집에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 크고 너무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힘과 권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갈수록 커지거나 더 커지려고 하고, 큰 교회에 돈과 권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규모가 작은 교회도 크기만 작을 뿐 생각이나 교회 운영하는 것을 보면 큰 교회와 똑같습니다.



교회가 작아지고 가난해진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비우고 예수의 십자가를 겸손히 짊어지고 이웃의 고통과 눈물에 동참한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영성을 잃지 않으려면 주변에 있는 작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섬기는데 헌금을 써야 하는데 교회가 지금처럼 물질을 움켜쥐고 자기들을 위해서만 쓰면 안 됩니다. 한국교회는 작고 가난해지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더 커지려는 맹목적 욕망을 극복하고 '건강한 작은 교회', 적절한 크기의 생동감 넘치는 '관계 지향적 교회'를 추구해야 합니다.



지역의 기독교로


기독교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의 종교가 아니고 천국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선교사(missionary)로 세워서 새로운 지역에 파송하십니다.(요20:21) 또 하나님의 사람을 대사(ambassador)로 세워서 그 사람이 사는 지역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진 메신저로 살게 하십니다.(고후5:20)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스스로 선교사가 되시고 대사가 되시는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총체적 위기의 원인은 "한국교회가 대형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대형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들마다 대형화 되고자 하는데서 비롯됐다. 한국교회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이는 바로 작은 교회 즉 동네 안에 자리한 건강한 작은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 대형 교회가 가진 장점도 있지만 모순과 한계가 더 크다. 담임목사는 제왕처럼 군림하고 교회를 대기업의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 구조를 가지고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공동체성을 구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양현표 총신대 교수 '대형교회의 역기능과 그 대안으로서 성숙한 작은 교회' 中



한국 교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작은 교회들이 대형교회 흉내를 내지 말고 스스로 작은 교회임을 인정하고 교회가 있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문화를 변화시키는 '풀뿌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미국 서부 개척자들처럼 지역을 점령해서 강제적 강압적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더 이상 안됩니다. 교회는 노인, 청소년, 환경, 교육, 생명, 통일, 원전, 복지 등등.... 그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고 지역 사람들과 같이 소통하고 같이 행동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지역의 기독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와 복음은 그 지역 상황과 만날 때 힘과 영향력이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ambassador)로 한 지역에 세워진 메신저들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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