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책의 사람
유학을 하겠다고 독일로 떠나 그곳에서 처음 주일을 맞던 날, 지금까지 소중한 인연을 지켜오고 있는 목사님을 그분이 섬기시던 교회에서 예배로 만났다. 예배가 끝나고 담소를 나눈 후 헤어질 무렵 그분은 당시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독한대조성경을 선물로 주셨다. 독일어와 한글이 2단으로 나란히 서 있는 하드커버의 갈색 성경은 독일어로 신학을 공부해보겠다 결심하고 이제 막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젊은 신학생에게 신기하고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두꺼운 책표지를 넘기자마자 만난 하얀 여백, 거기에는 주인을 닮은 정갈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이진경님께 드립니다. 독일에서 함께 만나 서로 기쁨 얻게 되길 바랍니다. ‘한 책의 사람’이길.”
신선하고 근사한 단어가 대뜸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책의 사람이라... 정말 멋진 말이네. 말 그대로 정말 그렇게 살고픈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말이잖아.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근사한 말은 목사님의 창작품은 아니었다. 이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라는 말은 목사님이 소속되어 있는 교단인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가 늘 마음에 품었던 말이었다고 한다. 창시자의 이 말은 그 목사님의 가슴에도 큰 울림과 결심으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존 웨슬리, 옥스퍼드 출신의 이 인텔리 그리스도인 목사가 문자 그대로 평생 달랑 성경 한 권만 읽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소원을 ‘한 책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한 책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마도 한 책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앞으로는 성경 이외의 세속적인 책은 그 어떤 것도 읽지 않겠다거나, 이 성경을 생애를 걸고 철저하게 연구하겠다거나, 평생 성경을 몇 독(讀) 하겠다는 결심의 마음과는 분명 그 방향이 다를 것이다. 한 책의 사람이 결코 성경 외골수의 인간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 책의 사람’이라는 말은 다음의 상들을 떠올리게 한다. 갈증을 해소해주는 샘물, 소중한 친구와 만나는 단골 찻집, 피곤한 영혼의 쉼터, 인생의 나침반, 나태를 꾸짖는 질책, 불의를 벌하는 채찍... 한 책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사람에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만약 ‘한 책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한 책의 사람’을 말한다면, 나는 그 책이 지니는 기원의 신성함이나 내용의 훌륭함과 완벽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땅의 삶을 함께 할 나의 반려자, 나의 사랑하는 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류를 이기지 못한 책들이 책꽂이의 구석진 자리로 밀려가는 동안에도 추억을 듬뿍 머금은 갈색 성경은 언제라도 손이 닿는 상석을 여전히 당연한 듯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따금씩 우연히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책은 열심히 처음 만났을 때의 마음을 상기시켜준다. 한 책의 사람이길. 그 책의 바람처럼 언젠가 한 책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시 119:105)
이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