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서복현 기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곧 100일이 다가온다. 지금 국정조사 진행을 보면 여전히 참사는 계속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국회에서 열린 기관보고 생방송을 듣자니, 책임 있는 부서와 인물들은 그 순간만을 모면하고 덮으려고 급급해 하더라. 당국은 세월호가 빨리 잊혀지기를 바라지만, 가족은 너무 빨리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렇듯 세월호는 모두에게 악몽이었다.
팽목항 언저리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당장 경제가 나빠졌다는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특히 관광, 스포츠, 연예, 이벤트, 사행 사업과 관련해서 더 심각하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심하고, 근신하던 우리 사회가 분위기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모양이다. 아직 사고책임 소재도 어수선하고, 피의자로 찍힌 유병언 일가의 꼬리 찾기도 실패한 마당인데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두리 뭉실 둘러대는 것은 선후가 잘못된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책임이지만, 원인과 결과 그 과정을 세세히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참사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 11명을 모두 찾더라도, 먼 훗날 세월호 참사 10년, 100년을 맞아도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동안 할 만 한 사람은 대부분 추모 공간을 찾아보았고, 슬픈 사연에 눈물로 공감했으며, 안타까운 말 한마디 보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누구나 가능하지만,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었다. 마음에서 우러나 추모의 정을 나누고, 즐거움을 절제하고 근신하며, 남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정 깊은 우리 국민들은 노란 리본의 슬픈 추억과 함께 오래오래 간직할 것이다. 꼭 그래야만 한다.
고마운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이어가려는 몸부림이다. 평소 디자이너를 꿈꾼 단원고 학생 박예슬 양의 유작전시회 소식은 바다에 빠진 꿈을 건져내려는 고마운 분들의 도움 때문에 가능하였다. 같은 학교 학생 이보미 양이 선배 졸업식에서 불렀던 ‘거위의 꿈’을 제목으로 세월호 다큐멘타리를 제작한다는 소식도 반갑다. 참사 1주년까지 완성하기 위해 영화투자자들을 모집한다고 들었다.
두 아버지가 십자가를 메고 안산을 기점으로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서 다시 대전까지 800Km를 걷는다는 뉴스는 무더위마저 오싹하게 만든다. 역시 단원고 희생자인 이승현, 김웅기 군의 아버지들은 40일 동안 무려 5Kg의 ‘예수고상’을 들고 뜨거운 아스팔트를 행진하는 중이다. 십자가에 내 걸린 노란 리본은 만장일까, 아니면 희망의 손수건일까?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긴 순례일 것이다. 그런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고 단원고 생존학생들은 1박 2일 동안 안산에서 국회까지 성난 뜨거운 길을 걸었다.
세월호와 관련해 그동안 자주 들었던 이름은 ‘서복현’이다. 마치 그 이름은 행여 세월호 참사가 잊혀 질까봐 진도 팽목항을 지키는 옛 이순신 장군의 부하처럼 충성스럽게 느껴진다. 서복현 기자는 JTBC ‘뉴스 9’의 앵커가 가장 먼저 불러내는 세월호 소식 그 자체였다. 그는 세월호 참사 후 87일 동안 날마다 뉴스 첫 꼭지의 리포터였다. 사고해역의 진실을 밝히려고 불침번을 서는 초병처럼, 진도 팽목항의 친밀한 이웃 어민처럼 그는 뉴스한복판을 지켜왔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 그가 87일 만에 귀가 한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초기와 달리 흰 이마의 잘 생긴 서 기자는 이젠 누렇게 그을린 동네 사람이 되었더라. 물론 뉴스의 중심에서 세월호가 떠난 것은 아니다. 서복현의 뒤를 이어 김관 기자가 계속 팽목항을 지킨다고 한다. 이렇듯 세월호의 아픔은 보도면 보도, 기도면 기도로 우리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할 이 시대의 거울이다. 남들이 모두 떠날 즈음, 비로소 휑한 팽목항에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엊그제 독일에서 메일이 날라 왔다. 세월호 참사를 다큐로 제작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간 재독교포 정옥희 기자였다. 지난 6월, 독일 방문 중에 세월호 취재를 하기 위해 서울을 급히 방문한다면서, 취재 지원을 요청받았다. 이제나 저제나 한국 도착을 기다렸는데, 어느 새 독일로 귀국해 고맙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연락할 새도, 필요한 도움도 없었다고 한다. 한국에 오니 도와주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무리한 부탁을 할 이유가 없었다고 하였다.
세월호는 이렇게 모든 사람의 관심사요, 자신의 일이었다. 곧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될 것이다. 그렇게 국가 차원에서 눈물을 닦아준다면, 차차 그 어두운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할 것이고 진실과 더불어 점점 제대로 된 대한민국으로 회복될 것이다. 그래서 눈을 부릅뜨고 기도드린다.
송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