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uit Chrétiens!, 오 거룩한 밤
성탄절이 지났지만 말구유 아기 예수의 따스한 은혜는 여전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탄절이 지나기 무섭게 분주한 연말연초의 분위기에 휩쓸려 버리곤 하지요. 겨울날 무심코 주머니에 두었던 핫팩이 다음날에도 여전히 따스함을 발하고 있음을 발견할 때처럼, 누구는 다른 누군가에게 따스함을 주기 위해 밤새 타올랐건만 그 따스함을 누리지 못해 아쉽기도 하고 밤 새 외로웠던 그의 뜨거움에 미안하기도 합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분주한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력의 첫날을 이미 한 달 쯤 전에 맞이했습니다. 조금 더 차분한 마음으로 이번 주와 다음 주 주현절이 오기 전까지 성탄의 따스함을 더욱 깊이 누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올해 성탄절을 전후하여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프랑스의 성탄 노래 ‘Minuit, Chrétiens/미뉘 크레티엉’입니다. 우리에게는 ‘O Holy Night’ 혹은 ‘오 거룩한 밤’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21세기 찬송가 622장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혹시나 올 해 성탄절 특송으로 부를 수 있을까 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가사를 되뇌었건만, 역시 올해도 새해 계획과 당회와 여러 가지 성탄 행사로 인하여 기회가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혼자라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듣는 가운데 성탄의 은혜 가운데 깊이 머물러 있었으니 이 노래는 이번 성탄에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1843년 성탄절에 프랑스의 시인 플라시드 카포(Placide Cappeau)는 마을 신부의 부탁으로 성탄시를 썼습니다. 몇 년 후 발레 음악 ‘지젤’로 유명한 아돌프 아당(Adolphe Adam)은 그 시에 아름다운 음악을 덧입혔습니다.
이 노래는 그 유명한 ‘명성가집’에도 실려 있어서 한국 교회에서도 많은 성가대가 성탄절에 즐겨 부릅니다. 하지만 성가대원들과 지휘자들은 늘 이 노래의 도입부에 애를 먹곤 하지요. 4/4 박자의 노래로서 셋잇단음표로 이루어진 전주가 한마디 혹은 두 마디를 꽉 채운 후에 정박에 들어가면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피차간에 좋을 것 같은데 굳이 두 번째 마디 셋째 박에 노래를 시작하게 만들어서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지휘자들과 성가대원들은 시작부터 틀리지 않기 위해서 잔뜩 긴장한 채로 준비하고 있다가 ‘요이~ 땅’을 할 때처럼 커다란 지휘 동작과 함께 상당한 악센트를 내면서 노래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실 작곡가가 원했던 것은 그와는 정반대의 악상입니다. 작곡가는 일부러 노래의 시작을 정박에 두지 않았고 그렇게 함으로 악센트를 없애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노래의 처음을 노래할 때는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매우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노래가 나와야합니다. 부점은 뭉툭해야 하며 그 어떤 악센트도 없이 노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 노래의 첫 번째 단어 ‘Minuit(미뉘)’는 ‘자정’ 혹은 ‘깊은 밤’을 의미합니다. 그 전에도 밤이었고 ‘영광의 아침 동이 터올 때 까지’ 그 밤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 밤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거룩한 밤이었기에 숨죽이듯 고요했고 그 밤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한 밤이었기에 적막처럼 조용했습니다. 작곡가 아당은 ‘Minuit’라는 인상적인 단어로 시작하는 이 노래가 그 고요하고 조용한 밤과 완전히 하나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이 노래가 존 설리번 드와이트(John Sullivan Dwight)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고 미국을 거쳐서 들어오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오 거룩한 밤’이라는 제목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 노래는 역시 오리지날 프랑스어로 들어야 깊은 감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1절의 세 번째 소절은 명성가 합창 악보의 우리말 가사로는 ‘우리를 위해 속죄하시려는 영광의 아침 동이 터온다’이지만 원어로는 ‘Le monde entier tressaille d’espérance, a cette nuit qui lui donne un sauveur’ 즉 ‘온 땅은 희망으로 박동하고 있습니다, 그 밤에 그가 구세주를 보내셨습니다’입니다. ‘Le monde(르 몽드, 세상)’라는 단어와 ‘tressaille(트레사유, 떨리다)’ 그리고 ‘espérance(에스페랑스, 희망)’와 같은 아름다운 프랑스어의 단어들이 가사 속에서 살아서 꿈틀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간파한 그 위대한 작곡가는 이 부분에서 베이스 부분에 4분 음표의 박동을 집어넣고 ‘un sauveur(소붸르, 구주)’라는 가장 중요한 단어에 이르기 까지 긴장을 점차적으로 고조시킵니다.
Minuit ! Chrétiens, c’est l’heure solennelle
Où l’homme Dieu descendit jusqu'à nous
Pour effacer la tache originelle
Et de son père arrêter le courroux
Le monde entier tressaille d’espérance
A cette nuit qui lui donne un sauveur
Peuple, à genoux, attends ta délivrance
Noël ! Noël ! Voici le Rédempteur !
깊은 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장엄한 시간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의 원죄를 소멸하시기 위해
아버지의 진노를 멈추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온 땅은 희망으로 박동하고 있습니다
그 밤에 그가 구세주를 보내셨습니다
백성들아 무릎 꿇고 구원을 기다리라
노엘! 노엘! 여기 구세주가 계시다
노엘! 노엘! 여기 구세주가 계시다
시대를 초월한 명곡인 만큼 이 노래를 남긴 음원도 굉장히 많습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이 노래를 여러 번 녹음했고 프랑스의 테너 죠르쥬 틸의 프랑스어 노래도 전설적인 명연주로 꼽힙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테너 유시 비욜링(Jussi Björling, 1911~1960)의 노래를 최고로 여깁니다. 프랑스어가 아닌 그의 모국어인 스웨덴어로 불러서 아쉬움이 있지만 적어도 이 곡에 있어서만큼은 그보다 더 위대한 노래가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연주를 들려줍니다. 고요하고 장엄한 그 밤을 표현한 음악성 또한 유시 비욜링의 노래가 단연코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ofKk_Etapq4?si=uI3cTtofQ5CouWje
<iframe width="408" height="331" src="https://www.youtube.com/embed/ofKk_Etapq4" title="Jussi Björling - O Helga Natt"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 allowfullscreen=""></iframe>
조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