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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2-27 22:15
   
한 해를 마감한다.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25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619 [77]

 

한 해를 마감한다.

 

한 해의 마감을 앞두고 있다. 글을 쓰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다. 지난 8월부터 지금까지 5개월 동안 키보드의 자판과 거리를 두며 살았다. 간혹 하얀 한글 문서를 열고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무엇을 쓸까 많은 고민이 들었지만 한 줄 쓰고 지우고, 한 줄 쓰고 다시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뭐든 습관이 중요하고 연속성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난 지금 한 해의 마감을 코앞에 두고 컴퓨터 앞에 앉아 다시 백지를 채워나간다. 

 

무엇부터 쓸까? 여러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국가자격증 하나 땄고, 훈련원 사무실과 리모델링, 훈련원의 1인 1실의 기도처 건축, 7월에 할퀴고 간 수마의 흔적 지우기, 그리고 산 아래로 이사를 했다. 5월부터 시작한 공사와 정리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신경 쓸 일이 많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구도가 바뀌어지는 형세에서는 한발 물러설 수 있게 되어 이제야 여유를 갖는다. 그리고 농사! 결론적으로 말하면 올해는 완전히 폭망이다. 이곳의 10년을 지내면서 이번과 같은 농사 짓기는 없었다. 잦은 비와 많은 양의 비는 농사에 대한 기대를 접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심었던 모든 작물은 이런저런 이유로 고사했다. 제대로 된 수확물은 없었다. 끽해야 상추 정도랄까? 상추도 몇 번 뜯어 먹고 난 뒤 주르룩 내리는 비에 수확을 포기하긴 했다. 

 

나의 최애 작물인 참깨는 내년에 쓸 종자 정도만 거둬졌다. 고추는 두 판(144모)을 심었는데 거두긴 10근 정도 될까? 고춧가루 빻아 한근씩 나눠 먹었으니 10근도 채 안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10월의 수확 작물 들깨. 자람새가 왕성하고 꽃도 잘 피고 열매도 무성하게 맺혀 옳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깻단을 베어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들깨키는 180센티인데 150센티인 나의 어깨에 들릴 때는 가련한 홑껍데기와 같았다. 결국 들깨도 잎만 무성하고 키만 컸던 것이지 낟알은 알이 덜 찬 쭉정이 비스끄무리 했다. 들깨는 아직도 비닐하우스 한켠에 세워진 채 털리기를 기다리고 있으나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나로서는 그저 ‘조금만 기다려라. 날이 풀리면 털어주리라’ 하며 바라볼 뿐이다. 

 

이제 마지막 작물이 하나 남았다. 내 통장의 무게를 저울질해줄 경제력을 지닐 수 있을 작물이다. 이 작물을 위해 나는 한 해 그토록 수고를 했다. 두둑을 만들고, 서둘러 비닐을 씌우고, 비오기 전날 심고, 고라니를 퇴치하려 애쓰고, 작물의 성장을 방해할까 풀베기를 수차례. 그렇게 한 작물을 위해 나는 5월부터 신경을 쓰고 몸을 움직였다. 사실 무심히 내리는 비에도 이 작물은 잘 버텨주었다. 오죽하면 수확하기 한달 전까지 파릇파릇한 잎과 줄기를 보여줬다. 겉으로 봐서는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게 했다. 나의 통장에 찍힐 숫자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하지만 그런 기분 좋은 상상은 들깨를 베면서 와르르 무너졌다. 들깨 낟알이 텅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바로 나의 기대를 한껏 받은 작물에게로 달려갔다. 밭 한가운데로 들어가 열매를 살폈다. 아뿔사! 오호 통재라! 마음이 무거워졌고 한 줄기에 덕지덕지 붙은 쭉정이를 훑어보자마자 나는 직감했다. 이 작물 또한 한낱 거름으로 뿌려질 것을. 결국 그랬다. 12월 초, 탈곡기의 요란한 소리 몇 분과 함께 나에게 들어온 것은 겨우 한 자루도 채 미치지 못한 그것도 죄다 쭉정이에 불과한 결과물이었다. 아, 너마저 나의 기대를 저버렸구나. 그렇다. 콩이었다. 두부를 만드는 백태. 작년보다도 더 못한 수확이었다. 지금 그 콩은 수확한 그대로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 어쩌면 들깨보다 더 나의 눈 밖에 나 있을 수 있다. 

 

그 작물들이 무슨 죄랴. 심고 키우고 거둔 것은 나의 일이었는데 소출이 적다 하여 말년에 이리 찬밥 신세로 전락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다시는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거둔 것보다 뿌린 동전이 더했다. 통장에 찍힌 숫자보다 나간 숫자가 더 많았다. 주위에서 그런다. 애쓴 보람도 없으니 차라리 농사를 접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나도 그러고 싶은 유혹이 강렬했으나 농사가 나에게 생계형이었다면 진즉에 포기했었을지 모른다. 생계형 농사가 아니기에 내년에는 농사를 그만두리라 하다가도 밭을 보면 다시 그래도 내년에는 괜찮겠지. 내년에는 다른 방식으로 하면 좀 나아지겠지 하며 스스로 다독이는 것이다. 그리고 잘 보살펴주지 못한 작물들에게 미안한 다음을 갖는다. 그래, 내년에는 너희들에게 조금 더 신경 쓰도록 하마. 그렇게 나의 2023년 소출은 폭망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현재 진행이니 폭망이라기보다 덜 된 농사였다라고 고쳐 쓰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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