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인생
미국 여행 중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한 가족이 미국에 이민을 왔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불법 이민자의 신분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병이 들었습니다. 가족 중에서 할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어 손녀딸이 할머니를 돌보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 손녀딸은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을 했고, 틈틈이 공부를 하느라 2년 과정을 4년 만에 졸업을 하였습니다. 그 여학생은 주립대학에 입학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영주권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녀의 성실함에 공감한 주립대학에서는 입학허가서를 내주었고 주립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병든 할머니를 돌보는 경험을 통해 아픈 사람을 돌보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의대로 꼽히는 존스홉킨스 대학에 입학허가서를 냈습니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에서는 여학생의 스토리에 감동을 받았고, 그녀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여 그녀에게 입학허가서를 내 주었습니다. 그녀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다. 하지만 학비가 문제였습니다. 마침 메릴랜드 한인들이 조직한 세종장학회에서 그녀의 스토리를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장학금을 지급하였습니다. 그 여학생은 학업을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스토리가 가져온 힘입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다윗은 스토리의 보고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는 하나님의 거절을 받아들이는 장면입니다. 역대기상 22장은 다윗이 성전 지을 준비를 완벽하게 갖춰 놓았다고 보도합니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성전을 지을 수 없다. 성전 짓는 것은 네 아들에게 맡겨라.” 성전 짓기를 너무나도 갈망했던 다윗에게 하나님의 거절 통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 예! 하고 순종을 했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다윗 스토리가 주는 감동은 순종에서 오는 것입니다. 다윗의 스토리는 순종의 스토리로 요약됩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모든 스토리에는 오래된,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자기 부정과 헌신, 그리고 그것이 불러오는 연대감입니다. 그래서 그 스토리를 통해 내 삶을 읽고, 상대방을 읽으면서 우리라는 공동체를 세워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스토리가 위대한 것은 자기 부정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자기 부정의 스토리를 써내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부정과 헌신이 평생의 스토리인 것이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신앙에서 스토리를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주변에 성공한 이야기나 축복받은 이야기, 부흥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지만 감동이 사라졌습니다. 자기 부정과 순종이 스토리에서 사라진 까닭입니다.
일본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사람이 거울을 보지만 실제 보는 것은 자신의 얼굴이라고 말합니다. 거울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은 물론이고 세계를 식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성경의 수많은 스토리들입니다. 오래된 그 스토리가 우리에게 미래인 까닭은 그 스토리가 나를 보게 하고, 우리를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야망을 비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함으로 자신의 야망을 꺾고 하나님의 비전에 참여했습니다. 성경 스토리의 전형입니다. 이걸 보지 못하니까 여전히 자신의 욕망과 하나님의 비전을 혼동하면서 엉뚱한 이야기 속을 헤메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작고 소박하지만, 힘이 있는 진정한 스토리를 담아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광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