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구름 흘러가는 곳
가을 하늘은 높고 넓고 맑습니다. 가을 하늘은 깨끗하고 깊어서 그를 배경 삼은 하늘 위의 구름도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고 그 움직임도 더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연휴 마지막 날 아내와 함께 고향 근처 철원 평야의 얕은 산에 오르니 구름이 손에 잡힐 것만 같다가도 이내 하염없이 멀어집니다.
저 구름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요? 혹시 저기 먼 산 너머 고향 마을에서 해맑게 뛰어노는 어린 시절의 하늘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생각이 스쳐 가는데 정말 그럴 것만 같았는지 이내 아랫눈시울이 시려옵니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곳
그리움도 흘러가라 파아란 싹이 트고
꽃들은 곱게 피어 날 오라 부르네
행복이 깃든 그 곳에 그리움도 흘러가라...
너무나 자연스레 떠오른 김용호 시 김동진 작곡의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의 첫 소절입니다. 한번 들으면 누구나 기억할 법한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가곡이라기보다는 영화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60년에 만들어진 김지미 최무룡 주연의 영화 ‘길은 멀어도’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대중성에 치중해서 그런지 멜로디가 매우 아름답고 유려하지만, 시적 끊어 읽기와 음악적 프레이즈가 맞지 않아 어색한 부분이 많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노래의 첫 소절은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곳 그리움도 흘러가라 파아란 싹이 트고’까지가 한 단락을 이루지만 시를 낭송할 때에는 아래와 같이 끊어 읽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멜로디의 힘이 워낙 강해서 이 노래를 부를 때에는 시의 문학적 서정성은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곳
그리움도 흘러가라
파아란 싹이 트고
꽃들은 곱게 피어 날 오라 부르네
행복이 깃든 그곳에 그리움도 흘러가라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이 가슴 깊이 불타는
영원한 나의 사랑 전할 곳
길은 멀어도 즐거움이 넘치는 곳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내 마음도 따라가라
그대를 만날 때까지
내 사랑도 흘러가라.
(후략)
이 아름다운 노래를 가장 아름답게 감상하는 방법 또한 의외입니다. 물론 저만의 견해이긴 하지만, 한국 사람이 아닌 미국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Barbara Bonney(1956년 4월 14일~)의 노래로 듣는 것입니다. 바바라 보니는 제가 좋아하는 성악가로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발성으로 품격 있는 노래를 들려주는 소프라노입니다. 그녀는 모차르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그리고 독일가곡과 바흐의 성악곡에 정통한 소프라노입니다. 오페라 역할 상으로는 소프라노 신영옥과 조수미의 중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 가곡과 오라토리오 부분에서는 앞서 언급한 두 사람은 물론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악가입니다.
노래를 들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녀가 부른 한국 노래는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 편안하고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웬만한 한국 성악가들보다 발음이 좋고 가사 표현도 좋습니다. 아마 이 녹음에서 반주를 맡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도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훌륭한 성악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성악의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성악도들이 좋은 성악가가 되기 위해 발성과 소리를 위한 테크닉에 매달렸을 때, 바바라 보니는 가사의 문학적 해석과 올바른 딕션에 집중했습니다. 미국 뉴헴프셔 대학(UNH)에서 성악을 공부했을 때도 독일어를 깊이 있게 공부했고 이후 미국인으로서는 특이한 행보로서 더욱 본질적인 성악 공부를 위해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3년 동안 수학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요, 다르게 보면 ‘본질적인 것에 해답이 있다’는 진리의 확증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성악의 본질인 ‘가사의 음악적 표현’에 충실했기에 바바라보니는 누구보다 발성이 좋은 성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력의 바바라 보니이기에 ‘눈’, ‘님이 오시는지’, ‘진달래 꽃’,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등 네 곡의 한국 노래의 녹음을 남긴 것이 놀랍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그녀가 녹음한 다른 한국 노래들도 꼭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 가곡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새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바바라 보니의 노래를 들은 한국 성악가들은 많은 반성을 하고 마음도 고쳐 매야 할 것입니다.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혀서 대중을 기만하고 좋은 발성을 위해서는 발음을 포기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외국인보다 우리 가곡의 발음을 더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성악가가 아닌 목사로서 살고 있지만, 저 또한 그와 같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저에게 같은 질문을 해 봅니다. ‘목사가 추구해야 할 본질은 무엇인가?’
큰 교회의 담임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인기 있는 목사, 유능한 설교자가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한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목사가 추구해야 할 본질입니다. 예수를 사랑하고 그의 십자가를 사랑할 때 진정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거 하는 것이 목회의 본질입니다. 비록 그 길은 여전히 아득하고 멀어 보이지만, 부디, 우리 모두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저 구름처럼 유유히 우리네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조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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