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주문
“배우자를 위한 기도는 아주 구체적이어야 해요.” 흔히 듣는 말이다. 생김새, 직업, 성격, 신앙 등등 모든 것을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만 제대로 된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고들 한다. 단지 배우자를 위한 기도뿐이랴, 우리가 일상에서 드리는 대부분의 기도는 이렇게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기도의 모습, 기도라기보다는 왠지 주문을 닮았다.
언젠가 빵부터 내용물, 소스까지 일일이 고객이 골라야 하는 샌드위치가게의 주문대 앞에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하는 기도의 모습은 우습게도 이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모습과 지독히도 닮은 듯하다.
“주님, 키는 180 정도면 좋겠습니다.” - “빵은 호밀빵으로 해주세요.”
“직업은 의사였으면 좋겠구요.” - “양상추는 많이 넣어주세요.”
“가난이나 편부모가정에서 자라 모난 성격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 “피클은 빼주세요.”
“하나님, 제가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는 거 아시죠?” - “계산은 일부는 현금으로 할게요.”
“제 기도에 응답해주신다면 남은 생도 주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 “나머지는 신용카드로 결제해주세요.”
이상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고 계신다는데도, 먹고 사는 문제는 염려하지 말라 하시는데도, 뭐가 필요한지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데도, 혹시 못 들으실까 중언(重言)을 하고 잘 이해하지 못하실까 부언(復言)을 해가며 우리는 끊임없이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아뢴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기도는 어느덧 주문으로 바뀌고 말았다.
시인 이문재는 스스로 기도를 배워나갔던 과정을 시로 쓴 적이 있다. 다음은 그가 쓴 시 <화살기도>의 뒷부분이다.
[...] 여배우를 만나고 난 뒤 얼마 안 되어, 또다른 기도법을 얻어들었습니다 마흔이 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 노작가분이 화살기도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거의 동시에 잃고 실어증에 걸리기까지 했던 노작가분은,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그 무엇이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화살을 날리듯이 하느님께 외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내 아이를 걷게 해주세요,처럼 단순할수룩, 그리고 강렬할수룩 화살기도는 효험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생을 살아온 여배우와 또 수많은 삶을 꿰뚫어온 노작가로부터 기도하는 법을 제대로 전수받은 것이었는데,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에게는 하늘로 쏘아야 할 화살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습니다 제가 하늘로 쏘아올린 첫 화살기도는 이랬습니다
하느님, 저로 하여금 이 많은 화살들을 버리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로 하여금 이 많은 화살들을 버리게 해주세요.” 다행히도 시인의 기도 걸음마는 기도를 주문으로 바꾸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이름을 가진 기도이든, 우리의 기도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은 가진 욕망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아니라 가진 욕망을 내버리는 것일 게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기도의 본도 결국 자신의 욕망을 꺾는 것이 아니었던가. 욕망은 흔히 비전의 옷을 입고 나타나고, 욕심은 자주 하나님의 뜻을 옷 입고 나타나 나를 속이기 일쑤다. 잠시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기도가 주문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니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향한 욕망의 화살촉을 더 이상 벼리지 않겠다는 기도를, 하나님을 향한 내 수많은 화살들을 버리겠다는 기도를.
“먼저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의를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마 6:33)
이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