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관수도원의 독일식 정통 수제 소시지
경남 칠곡에는 왜관수도원이 있다. 개인적으로 꼭 가보고 싶었던 가톨릭수도원이었는데 지난 9월 13일 하양무학로교회를 방문하고 올라오면서 들리게 되었다. 왜관수도원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이 수도원이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때 한국인 피난민 1만 4천명을 구했던 메러디스 빅토리 호(SS Meredith Victory)의 선장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1914~2001)의 은혜를 기억해서 재정난에 문을 닫게 된 뉴저지의 베네딕트회 뉴턴수도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준 곳이라는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너드 라루 선장은 이곳의 수도사가 되어 2001년 10월 14일이 8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흥남철수작전의 마지막 배인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군수물자를 버리고 피난민을 태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라루 선장은 훗날 흥남 철수 작전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쌍안경으로 비참한 광경을 봤다. 피난민들은 이거나 지거나 끌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항구로 몰려들었고, 그들 옆에는 병아리처럼 겁에 질린 아이들이 있었다" "때때로 그 항해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라루 선장이 수도사가 된 배경은 이때의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1954년 뉴저지 주 뉴턴시에 있는 베네딕트회의 성 바오로 수도원(St. Paul's Abbey in Newton, N.J)에 들어가 '마리너스'(Marinus)라는 이름의 수사가 되었다. 그는 매일 아침 수도원 종을 울려 수도사들이 아침기도를 할 수 있도록 깨웠고, 설거지를 하거나 수도원 선물가게에서 일하는 등 허드렛일을 하며 수도생활을 했다.
2000년 그가 있던 뉴턴 수도원이 재정난으로 수도사가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빠졌을 때 한국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뉴저지에 수도사 7명을 파견해주었다. 이들 중에서는 흥남철수작전때 라루 선장이 구했던 강순건 신부도 포함됐다.
왜관수도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입구에는 구 성당이 아름답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측에는 새로 지은 규모 있는 성당이 있었다. 수도원 예배당은 가톨릭특유의 엄숙함이 느껴졌다. 이 왜관수도원에는 아마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분도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분도인쇄소, 분도가구공예사, 농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분도(芬道)’는 가톨릭계의 성인인 ‘베네딕도’의 한자식 표기이다.
왜관수도원에서 유명한 것은 이곳에서 생산하는 수제소시지이다. 왜관수도원에서 수제소시지를 생산한 것은 100년이 넘었다, 한국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은 1909년 독일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한국에 선교 파견되면서 시작되었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정신에 따라 공동체 자급자족과 독일 형제들의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손수 소시지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독일 선교사에게서 전수받은 기술로 만든 소시지는 수도원 공동체 식탁에 오르거나 공동체 은인들에게 선물로 전해졌다. 이 소시지가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2011년 ‘분도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등록하여 일반인들도 맛볼 수 있게 됐다. 3명의 한국 수사들이 독일 뮌헨 인근의 상크 오틸리엔 수도원과 뷔르츠부룩 인근의 뮌스터바르작 수도원에서 소시지 제조 기술을 익히고 돌아왔고, 2019년에는‘분도푸드’로 이름을 바꾸고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에 따라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들을 갖췄다.
왜관수도원에서도 직접 구입할 수 있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저녁시간이라서 이미 판매하는 곳이 퇴근을 했기에 인터넷주문으로 구입했다. 네이버에서 분도푸드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곳에서 만드는 4가지 종류의 소시지를 세트로 구입하는데 택배비포함 57000원이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소시지와 햄을 비롯한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할 만큼 소시지나 햄같은 가공육에는 아질산나트륨을 비롯한 몸에 나쁜 식품첨가물들이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분도소시지는 냉동하지 않은 생고기만을 사용하고, 소금을 제외한 향신료와 결착제 등은 모두 독일에서 공수한 것을 쓰고 인공첨가물은 넣지 않는다. 그래서 먹어보면 요즘 마트에서 판매하는 햄과 소시지와는 전혀 다른 건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독일에서 만드는 방식 그대로 제조해 독일 현지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분도소시지는 다음과 같이 4가지 종류이다.
겔브부어스트(Gelbwurst)
겔브부어스트는 부드러운 식감으로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즐겨먹는 부어스트 중 하나다. ‘Gelb’는 노란색을 뜻하고 ‘Wurst’는 소시지의 독일어로, 겔브부어스트라는 이름은 제품의 포장지 색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소시지는 하얀 색에 가깝다. 은은한 향이 나는 겔브소시지는 이미 익힌 제품으로 그냥 얇게 썰어서 먹으면 된다. 짜지 않고 담백하며 부드러운 맛이다.
마늘부어스트(knoblauchwurst)
마늘을 즐겨먹는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소시지다. 마늘부어스트는 마늘, 고춧가루, 후추, 마요란 등의 양념을 고가와 함께 적당한 비율로 버무려 숙성시킨 제품으로 마늘을 즐겨먹는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는 평을 받는다. 탱글탱글 쫀쫀한 다진 고기의 식감에 마늘향이 은은하게 배어있다. 적당히 짭짤하고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난다. 마늘소시지 역시 이미 익힌 제품이기에 그냥 썰어 먹으면 된다.
바이스부어스트(Weißwurst)
바이스부어스트는 독일 바이에른, 특히 뮌헨의 유명한 먹거리다. 부드러운 식감의 고기를 파슬리와 함께 천연 돈장에 넣어 익힌 제품이다. 제품의 비닐포장을 벗기고 냄비에 넣고 물과 함께 끓이다가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소시지가 충분히 따뜻해 질 때까지 약 7~10분 정도 기다렸다 먹으면 된다. 겔브소시지보다 훨씬 곱게 오랫동안 갈아 만들어서 그런지 굉장히 부드러운 식감이다. 짜지 않아서 그냥 먹어도 되지만 소스를 찍어 먹으면 좋다.
그릴부어스트(Grillwurst)
그릴에 구워먹는 독일의 대표적 소시지로, 독일에서는 보통 잘 구워진 그릴부어스트를 빵 사이에 넣어 케첩이나 머스타스 소스와 함께 핫도그처럼 만들어 먹는다. 간식이나 안주는 물론, 캠핑 등 바비큐 자리에 잘 어울리는 제품이다. 워터프라잉 조리법으로 구우면 더 맛있다. 해동한 그릴 부어스트를 기름 두른 팬이나 그릴에 물 1센티 정도와 식용유 한 숟갈을 넣고 뚜껑을 덮은 뒤 센 불에서 물이 없어질 때까지 조리하다가 물이 없어지면 중불로 낮추어 노릇하게 구워먹으면 된다. 촉촉하고 바삭한 식감에 그윽한 풍미, 고소하고 깊은 감칠맛과 씹을 때 가장 고기질감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익숙한 소시지이다.
수도사들이 만든 독일의 정통 수제 소시지의 건강한 맛을 경험하길 원한다면 왜관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만든 분도소시지를 꼭 한번 드셔보시길 추천하는 바이다.
임석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