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절되지 않는 ‘땅 밟기 선교’
한국 개신교의 적지 않은 교회들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소위 ‘땅 밟기 선교’를 하여 물의를 빚었는데, 아직도 이러한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방학이 되면 많은 교회들이 ‘해외 단기 선교’를 준비하고 실행하고 있다. 이 단기 선교는 기존의 자기네 지역 교회나 선교단체 등에서 파송된 장기 선교사들이 개척한 교회를 방문하여, 그 교회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활동이다. 이 단기 선교 과정에서 많은 개신교인들은 일정 지역을 선정한 뒤에, 소위 ‘땅 밟기 선교’라 불리는 사역을 전개해 왔다.
이 ‘땅 밟기 선교’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개신교인들이 주장하는 성경 말씀의 근거는 구약성경의 여호수아에 3군데(1:3,6:2-3,14:9) 나타나 있는 말씀을 내세운다. 이 말씀들에는 ‘땅 밟기’라는 용어가 들어있는데, 이것을 성경적 선교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이러한 ‘땅 밟기 선교’ 행위가, 인터넷을 통하여 관련된 동영상이 국내외에 유포되면서 종교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켰다. 여기서는 이러한 ‘땅 밟기 선교’와 관련하여 이런 행위가 성경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먼저, 여호수아 1장 1-3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다 음 -
1절 :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절 :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절 :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본문 내용은,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로 선택받은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고 용기를 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한 가나안 땅은, 43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었다(창15:18-21). 그래서 3절에 나오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기만 하면 된다. 즉 그들이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그들의 소유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후손과 땅에 대한 언약이 성취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한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도록 축복해 주신 것이다. 당시 가나안 원주민들은 성적으로 타락해 있었고, 종교적으로도 음란하고 패악했으며,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는 사악한 풍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진멸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 다음으로, 여호수아 6장 2-3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다 음 -
2절 :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절 :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본문 내용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그의 손에 붙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에 한 바퀴씩 6일 동안 돈 후에,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여리고 성은 무너지고 정복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그 다음으로, 여호수아 14장 9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다 음 -
9절 :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본문 내용은,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한 갈렙에게 한 말이다. 여기서 갈렙은 가나안 땅을 두루 정탐하였기 때문에, 그는 가나안 땅을 마음대로 차지할 권리가 있었다.
위의 본문 내용들(수1:1-3, 6:2-3, 14:9)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한 것, 즉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다”는 것을 시행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과 힘이 아니라, 애굽에서 그들을 구출해 내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에 따라 여리고를 멸하신 것이다. 이 여리고 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대로 기업으로 주실 땅 중에 첫 번째 성읍이었다. 이 견고한 성이 무너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 주변을 돌면서 땅을 밟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와 그분의 권능으로 이루심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한편, 한국 개신교에서는 오래 전부터 위 본문들을 왜곡하여 해석하며 잘못된 적용을 되풀이 해 왔다. 즉 본문에 나오는 발바닥으로 밟는 곳(수1:3)과 네 발로 밟는 땅을 네게 준다(수14:9)는 구절에 초점을 맞추어 그릇된 해석과 주장을 해 왔는데,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땅 밟기 선교의 시작은 원래 ‘신사도운동의 영적도해’라는 사상에서 생겨난 것이다. 여기서 신사도운동(新使徒運動)은 미국의 피터 와그너가 세운 현대판 은사운동이며, 영적도해(Spiritual Mapping)는 이 지구의 모든 지역을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과 마귀가 주관하는 영역으로 나뉜 것을 말한다. 이 영적도해사상은 피터 와그너와 존 도우슨 등이 주장한 이론인데, 말하자면 각 지역에는 그 지역을 주관하는 지역의 영들, 곧 지역을 주관하는 귀신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것들을 몰아내는 것이 바로 기독교 복음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에 적극적으로 가입한 단체로는, 미국의 ‘신사도운동 단체, ‘예수전도단’과 한국의 ‘인터콥’ 등이 있다. 신사도운동의 대부인 피터 와그너는 ‘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라는 책을 썼고, 예수전도단의 존 도우슨은 ‘하나님을 위하여 도시를 점령하라’는 책을, 인터콥의 최바울은 ‘세계영적도해’라는 책을 냈다. 이들 단체들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지역과 마귀가 다스리는 지역을 따로 구분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땅의 영역에 한정시키면서, 하나님과 마귀의 대결구도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사도행전 17장 24절에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라”고 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주인이라고 했으므로, 마귀가 다스리는 지역을 별도로 구분해 놓지 않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28:18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했고, 또 눅16:15에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따라, 신자들은 초기 교회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복음을 전해 왔다.
- 수십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한국 개신교의 ‘땅 밟기 선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상당한 물의를 빚어 왔는데, 이에 대한 성경학자들의 비판 사례들을 살펴보자.
사례 1) ‘땅 밟기 선교’에 대하여
많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샤머니즘을 극복하지 못하고, 복음이 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하고, 신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도 갖추지 못한 채, 이른바 선교 열정만으로 무슨 무슨 ‘스탄’이라는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땅 밟기’하는 선교의 결과를 보라. 중세의 십자군이 일으킨 역효과가 그대로 나타고 있지 않은가. 봉은사 ‘땅 밟기’도 그런 결과를 낳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너희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욕을 당한다.”라고 사도 바울이 자기 백성 유대인들에게 한 절규(롬2:24, 사52:5)가 오늘 한국 교회에도 하는 절규가 아닌가? 그런데도 한국의 선교 지도자들은 선교 전략으로 ‘땅 밟기’를 주장한다.
몇 년 전 미국 시카고 휘튼대학에서 열린 ‘한인세계 선교대회’에서도 ‘땅 밟기’를 중심으로 한 선교 전략을 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중요한 대회에 모인 신학자·선교학자·교회 지도자·선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런 선교 전략을 짰다면, 그것은 놀랍고 슬픈 일이다. 한국 교회는 급격히 쇠락하고 있다. 일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군 운동의 정신과 승리주의(Triumphalism)에 빠져 있는 듯하다. 몇몇 소수의 힘없는 그리스도인이나 단체들을 제외하고는 진정한 회개와 갱신의 기미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총신대 교수 김세윤 박사의 책,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44쪽, 2017년)
사례 2) ‘땅 밟기 선교’는 성경적인가?
지난 2014년 7월 7일, 한국 기독교 청년들 3인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사원 내에서 선교기도를 하며, 일명 ‘땅 밟기 기도’ 행위를 한 것으로 인하여 충격을 주고 있다며, 그곳에서 묵언수행을 하던 비구니 법수 스님이란 분이 법보신문에 글을 올리고 동영상을 올렸다. 그 결과 인터넷에 수많은 글들이 회자되며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도, 찬양인도자학교 소속의 기독청년 5명이 봉은사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올리는 동영상이, ‘봉은사 땅 밟기’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상당한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2010년 10월에는 대구기독교총연합회가 대구 불교테마공원 설립반대 운동을 하면서, 대구 동화사 성보 박물관 주차장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문제가 되었다. 2011년 2월에는, 한국 개신교 교인들이 버마의 한 법당에 둘러앉아 손을 잡고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를 드리는 이른 바, ‘미얀마 땅 밟기’동영상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오는 17일 한국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4대 종단 지도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종교화합 및 공존을 위한 종교 평화법 및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한다. (한국기독교이단상담연구소장 박형택 목사 글 중에서)
사례 3) ‘땅 밟기 선교’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찬양인도자학교라는 한 단체에 소속된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만든, ‘땅 밟기’ 동영상 논란이 한국사회와 기독교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지난달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된 이 동영상은, 기독교와 불교 간 갈등의 발화점이 되었다. 또 기독교 내 땅 밟기 선교에 대한 개념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 비판과 더불어 해답이 없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금번 봉은사 땅 밟기 기도에 대한 기독교내의 논쟁과 비판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땅 밟기 자체가 문제냐는 것과, 정복주의 선교관에 대한 신학과 현장의 괴리 문제라는 평가가 일고 있는 형편이다.
우선 땅 밟기 기도는 정복주의적, 승리주의적 발상으로 기독교 선교에 방해가 된다. 교회가 단기선교팀을 통해 행해지는 땅 밟기 기도는 민간신앙적인 혼합주의가 내포된 것이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창조론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땅 밟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땅 밟기 선교를 강조하기 이전에, 성경에서 명령하지 않은 것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선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때 그 타당성이 인정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백석대 장훈태 교수 글 중에서)
상술했듯이, 한국 개신교에서 ‘땅 밟기 선교’를 하는 자들이 그러한 행위를 옳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를 내세우는 성경 말씀은, 주로 ‘여리고성 돌기’를 말한다. 즉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매일 여리고성 주위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고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고 큰 소리로 외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려 멸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땅 밟기식 선교를 하는 자들은 이 말씀 내용을, 일명 ‘여리고 기도’나 ‘땅 밟기 기도’라 부르며, 이 말씀 내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며, 오늘날 국내외에서 땅 밟기 선교라는 명목으로 실행해 왔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여리고 성 전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법과 권능으로 여리고 성을 멸하시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대로,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따른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땅 밟기식 선교’ 운운하며 오늘날 신약 교회의 선교 방식에 적용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으로 매우 잘못된 것이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5장에 ‘나아만’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 시대에 시리아(아람)의 군대장관이었다. 그는 나병(문둥병)으로 고생하였으나,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따라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음으로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았다(왕하5:1-27). 만약 이 성경 말씀을 신약 교회시대에 적용한다고 치자. 그래서 개신교 목사들이 나병에 걸린 신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요단강이나 이와 유사한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 얼마나 황당하며 허황된 말이겠는가.
오랜 기간 동안 한국 개신교의 ‘땅 밟기식 선교나 기도’가 구약성경의 ‘여리고식 땅 밟기’를 모방하고 적용하면서 실행해 왔다. 이와 같이 성경을 왜곡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 왔듯이, 만약 구약성경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치는 방법을 오늘날 교회시대에 적용하고 실행한다면, 이것은 ‘여리고식 땅 밟기’를 교회시대에 적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 여호수아에서 땅을 밟으면서 여리고성을 돌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과 방법으로 여리고 전투에 단 한 번 나타나 있다. 이 외에 성경 어디에도 땅을 밟거나 돌면서 전투에 임하라는 말씀은 나타나 있지 않다. 더욱이 신약성경에서도 전도나 선교에 관련해서 땅을 밟거나 돌면서 기도나 선교를 하라는 말씀이나 그러한 사례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땅 밟기 기도나 선교’는 애당초 ‘신사도운동’과 같은 비성경적인 단체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생겨났다. 이들은 성경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인위적으로 적용하며 활용해 온 것이다. 이러한 비성경적인 행위들이 기독교 안팎에서 영적 분별력과 식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지탄을 받아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성경적인 행위는 근절되어야 하고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권영문 / 전 경성대 교직원, 현 기독교 칼럼니스트 / 「성경 번역과 해석 올바른 설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