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학로교회와 다방물볕
한 달 전 네 명의 목회자들이 모임을 가졌다. 예배당과 예배공간에 대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졌고 건축가 승효상씨가 설계하고 건축한 예배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2022년 6월 달에 승효상씨가 건축한 밀양 명례성지(카톨릭순교자 신석복 기념성당)를 방문하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그 중 한 목사님이 무학로교회를 언급했다. 승효상씨가 지은 경남 하양에 있는 작은 감리교회인 무학로교회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 듣는 생소한 교회였다. 그런데 한 선배목사님께서 무학로교회의 담임목사님과 친분이 있다고 하셨다. 무학로교회도 훌륭하지만 그 교회 담임이신 조원경 목사님은 훨씬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무학로교회도 궁금해지고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더 궁금해졌다. 그런 계기로 우리 네 명은 이 교회를 방문할 날짜를 정했다.
9월 11일(월) 아침 9시 30분 함께 모여 경남 경산 하양읍으로 출발했다. 청명한 하늘만큼 우리 마음도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3시간을 달려 무학로교회에 도착했다. 갈색벽돌로 지은 창문 없는 예배당건물과 야외 성전 바닥에 깔린 녹색잔디 그리고 흰색의 구 예배당과 그 위에 올려져 있는 종탑십자가의 모습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야외성전에는 예배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가 음악회 외에 다양한 용도로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새 예배당과 옛 예배당 사이 길로 들어가면 마당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은행나무 건너편에 정말 오래된 전통한옥 두 채가 ㄱ자로 위치해 있다. 1936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현재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과 1960년대에 잠사(누에치는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교회 사무실 겸 화장실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100년 전 건축물과 100년 후 현대적 건축물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가운데 위치한 은행나무가 설계자인 승효상씨가 가장 포인트를 둔 것이라고 한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길은 한 길로만 들어갈 수 있도록 리딩라인(leeding line)이 표시되어있다. 예배당 입구에는 수반(작은 연못)이 두 군데 있다. 검은 자갈돌이 깔린 이 수반에는 늘 물이 일정하게 넘쳐흐른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양쪽 물을 건너는 다리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기 전 저편은 속세이다. 홍해와 요단강을 건넌다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물다리를 건너간다. 또 이 물다리를 건너면서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아 하나님을 뵙기 건에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좁은 복도에 들어가면 검은색의 웅장하고 무거운 쇠로 만든 예배당 문이 있다. 세속의 경계를 의미하는 육중한 문을 열면 생각보다 훨씬 작은 예배당이 눈앞에 등장한다. 22평의 공간에는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40-50명 정도밖에 앉을 수 없다. 세속과 통하는 창문이 하나도 없지만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강대상 위쪽 천장의 유리를 통해서 비춰지는 햇살 때문이다. 엄숙한 신비감을 선사한다. 그저 예배당 공간 안에 머물러 있을 뿐인데 내 안에 있는 욕망과 욕심이 비워지는 느낌이다.
벽돌로 만든 낮은 강대상은 고정되어 있다. 설교대와 회중의자 사이에 높이의 차이가 없다. 강대상 우측에 설교자의 의자도 아주 낮다. 장의자에는 성경받침대도 없고 방석도 없다. 거룩한 집에 인간의 기술을 최소화하기 위해 52년 숙련된 목수가 참죽나무를 이용해 “끼어맞추기식”으로 제작된 의자들이다. 편리에서 불편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당이다. 인상적인 것은 강대상 좌측에 원통형 벽돌구조이다.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야곱의 사다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설교자와 대표기도자가 강단에 서기 전 하나님과 영으로 사전에 교통하는 예비의 자리라고 한다. 강단 우측 위쪽에 무광택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십자가는 위에서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그림자가 비춰진다.
예배당을 다 둘러 본 후 조원경목사님의 목양실에 초대를 받았다. 默靖草堂(묵정초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목양실은 한 평 남짓한 공간이다. 정말 오래된 좌식나무책상이 있고 한쪽 벽에는 한자로 된 오래된 책들이 있다. 선풍기는 30년은 될 듯 한 골드스타(금성)제품이다. 소박해도 너무도 소박하다. 하지만 조원경목사님의 학문과 영성의 깊이는 소박하지 않다. 짧은 머리, 단아한 체구에 까만 피부, 하얀고무신을 신으신 조원경 목사님의 모습은.모르는 사람이 보면 평범한 아저씨요, 조금 아는 분들은 좀 특이한 기인이라고 생각될 듯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재야의 고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범인이 헤아리기 어려운 깊이와 경지에 이르셨음에도 불구하고 전해주시는 말씀과 내용이 너무도 겸손하시고 소탈하시다.
조원경목사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해창(海蒼) 조병국(趙柄國, 1883~1954)선생이다. 그는 1919년 청송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일제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중 독립운동을 벌인 기독교인들과 접하면서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깊이 있는 유학자였지만 내면에는 깊은 기독교신앙을 지닌 분이었다. 조원경목사님도 20여년 한학공부를 하였다. 동양철학박사, 영국쉐필드대에서 신학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유교·불교·기독교 '비교종교학'을 강의할 정도이다. 현재 나라얼연구소 이사장이기도 하다. 2022년에는 국학자료 1만 1천여 점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인물이 감리교에 있다는 것도 놀랍고 이런 인물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더 놀라웠다.
이날 식사와 후식은 교회 건너편에 위치한 ‘다방물볕’에서 대접받았다. 물볕은 경산 하양의 순 우리말이다. 다방물볕은 건축가 승효상씨의 아들 승지후건축가가 설계 감리한 문화공간 겸 카페이다. 이곳에 배치된 가구와 소품들은 승효상씨의 작품이다. 같은 건축가의 작품이기에 교회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마치 교회의 부속건물같은 느낌이이지만 다방물볕은 무학로교회 황영예장로님이 운영하는 별도의 사업장이다. 인상 좋으시고 성격좋으신 황영예장로님도 알고보니 철학박사이시다. 시골교회 수준이 장난 아니다.
다양한 커피와 아이스크림, 주스, 스무디와 빵을 판매하지만 식사도 주문할 수 있다. 다방물볕의 식사메뉴는 함박스테이크 한가지이다. 미리 예약하면 물볕갤러리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다. 함박스테이크는 코스요리로 나온다. 먼저 리코타치즈 샐러드와 빵, 단호박스프가 나오고 이후 직접 만든 함박스테이크가 담긴 접시에는 밥과 감자, 피망, 가지, 버섯, 양파, 토마토, 당근이 구워져 나온다. 식사 후 커피까지 세트메뉴로 2만5천원이다. 식사는 훌륭하다. 디저트로는 상하목장 유기농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주셨는데 내 생애 먹어본 아이스크림 중에 가장 맛이 있었다.
경남 경산은 무학로교회와 다방물볕을 방문할 이유만으로도 찾아갈 이유가 충분하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교회와 다방물볕의 건축물도 훌륭하고 그곳을 지키고 섬기는 분들은 더 아름답다. 잔잔하고도 깊은 여운을 가슴에 담고 돌아오는 길 내내 만족감이 있었고, 함께 해준 분들의 소중함과 고마움도 느껴졌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하루였다.
임석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