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써 내려가는 이력서
사람들은 이력서를 더 두드러지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느라 이력서를 받아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화려하게 장식된 이력서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면접 시간에 만나 보면, 빼곡하게 채워진 이력서의 글자들과는 사뭇 차이나 나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이력서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통합된 삶으로 채워간다. 종이 위의 이력서가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바르고 알찬 삶이 자신의 진정한 이력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치고 힘든 선교사들을 위해 기감 중앙연회는 “선교사 힐링캠프”를 개최했다. 중앙연회 기관인 엔상담센터 대표로 참여해 선교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조화된 상담은 아니었지만 같은 곳을 보고 걸으며, 음식을 먹고, 함께 앉아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가운데 진솔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선교사들은 다들 존경스럽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삶 전부를 내려놓고 사는 사람들이다. 아주 특별하다. 낯선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일구기 위해 일반인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선교의 여정 여정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서로의 눈물이 깊은 소통을 돕기도 했다. 예전에 비하면 선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한국교회는 여전히 선교사의 고생과 헌신을 격려할 뿐만 아니라 최전방에 서 있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하고 존경한다.
타 문화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에게는 스트레스 요인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스트레스 지수가 0에서 100까지 있다고 볼 때, 거주지의 변화가 주는 스트레스 지수가 20이고, 배우자의 사망이 주는 스트레스 지수가 100, 한국 성인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보통 40-50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교사는 평균 150에서 초임 선교사의 경우는 400까지 이른다는 연구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곳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서 눈에 보이는 선교의 열매까지 거둬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보니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국에 살다 보면 작은 문제도 확대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그때그때 스트레스를 풀거나 여러 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선교지에서는 그런 방법들을 찾는 것이 여의치 않다. 그럼에도 선교사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평가 앞에 설 그날을 소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정신건강을 돌보아 온 정신과 의사 마저리 훠일은 선교사들이 얻게 되는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영적인 상처들을 “영광스러운 상처”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사역 중에 얻게 되는 상처를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선교사들이 써 내려가는 이력서는 하나님이 보신다. 선교지에서 흘리는 눈물, 고통, 아픔, 외로움은 하나님께서 보고 알고 계신다. 사도 바울의 젊은 시절 이력서는 참으로 화려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바울이 자신의 삶으로 써 내려간 이력서는 그저 그리스도인들에게 폭력을 행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바울은 그간의 이력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리고 그는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삶 속으로 용기있게 뛰어들었다. 나는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의 삶이 이러한 바울의 삶과 오버랩되곤 한다.
삶보다 더 확실한 이력서는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가 어떤 사람인지, 누가 얼마나 참되게 살아가는 사람인지 서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부탁하면 자신이 아는 사람들 가운데에 제일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추천하기도 한다. 각자의 삶이 눈에 보이는 이력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부끄러운 삶의 이력서를 써왔다면 이제부터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이력서를 써 내려가기를 소망하면 어떨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선교사들처럼, 사도 바울처럼 말이다.
김화순∥중앙연회 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