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 내 이야기
얼마 전 금요일 오후에 한국정교회에서 긴급 간담회가 열렸다. ‘우크라이나는 지금?’이란 주제였다. 이날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기자로 유명한 김영미 PD가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을 소개하였다. 그 자리에는 정교회 사제의 일원인 우크라이나인 로만 신부도 함께 하였다. 그는 한국말 문맹이라고 하던데, 마치 김 PD의 이야기를 다 알아듣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글썽였다.
김영미 PD의 증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많게는 400여 명의 외신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날 증인은 종군 기자들이 겪는 위험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과 내일이 다른 고지전(高地戰)과 같은 전황을 보도하는 일은 어느 순간 별로 관심이 없어졌다고 한다. 최근 바흐무트 지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모두 서로 점령했다고 하지만, 그 현장에 들어가서 진실을 보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김 PD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스포츠 경기중계 보듯 구경하는 태도를 경계하였다. 또 정치적 시각으로 어느 입장의 편에 서서 관람하려는 자세도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태도와 입장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면 결코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최근 푸틴과 맞섰던 전쟁 용병 바그너 그룹 프리고진의 갈등관계를 도박판의 심심풀이 화제로 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시점에서 전쟁의 원인이나 배경 혹은 전쟁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지금 전쟁 때문에 고통을 겪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현실이다. 전쟁터는 구체적인 한 사람, 한 가족이 치루는 삶의 터전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언제까지 가정의 희생과 가족의 해체가 지속될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 인간의 얼굴을 한 전쟁은 없는 법이다. 전 국민이 심각한 트라우마 상태인 우크라이나의 현실이 하루빨리 전쟁을 중단해야 할 이유다.
전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종군기자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스토리”라고 하였다. 일상에서 전쟁을 치루는 우크라이나 사람은 저마다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고, 누구나 유난한 기사가 된다는 것이다.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우크라이나 사람은 처음 만나면 먼저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전쟁 뉴스는 어제와 오늘이 다른 전황이 주목받지만, 포연(砲煙)에 가려진 보통 사람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최근 전쟁 보도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개전을 알리는 미사일 공격을 밤새 중계방송 보듯 시청한 우리 시대는 이제 손바닥 안의 유튜브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실시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날마다 전쟁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의 아우성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다. 전황을 게임 설명하듯 따지다 보니, 전쟁범죄가 더 이상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메이드 인 코리아’ 신형무기가 사람의 목숨을 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선진국의 자부심을 자랑할텐가, 싶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시기를 가늠한다. 그들은 “평화협정은 고사하고 정전협정도 없이, 현 전선에서 국지전을 벌이다가 굳어지는 ‘동결된 전쟁’이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크다”(정의길)고 전망한다. 전쟁을 기획한 양대 진영의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 때문이다. 현대전쟁의 메카니즘은 재래식 무기의 소진과 신무기의 실험을 위해 일상적인 전쟁터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선진국의 무기 기업 투자자들은 그악스럽게 더 많은 무기 소비를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을 때 한국정교회가 발표한 성명이다. “무기를 통해, 전쟁을 통해, 거짓말을 통해서는 세상에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친절과 진실에 대한 존중이, 이 세상의 비극과 고통을 없앨 수 있습니다.” 현실 세계를 지옥처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람들에게 평화는 얼마나 절실한 간구일까? 70년 전 맺은 정전협정 후 여전히 휴전상태인 우리는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절실히 기도와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