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라
출근길에 중랑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노라면 지자체별로 경쟁이라도 하듯 천변 조경에 많은 애를 쓰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노원구의 조경에서는 시민들의 삶 속에 자연스레 스민 아기자기한 세련됨이 돋보이고 중랑구는 유채꽃이나 장미 등 때에 따라 한 가지 꽃을 가득 심어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연출합니다.
하지만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에 있는 법이지요. 게다가 천변 뚝방길 만큼은 옛적부터 이름 모를 온갖 잡초들이 그곳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벌레들의 놀이터와 작은 새들의 쉼터가 되어 주기도 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환한 그림자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심다가 잘못 날아온 씨앗들이 홀로 꽃을 피워도 뚝방길 잡초들은 당연한 듯 자기 식구로 맞아 줍니다. 중랑천 뚝방길에서는 그렇게 잡초들 사이에 잘못 핀 꽃들이 가장 예쁩니다. 세계적으로 크고 번잡한 대도시 안에 살면서 출근길에 이렇게 다양한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중랑천을 벗어나 우리 교회가 속한 동대문구에 진입하면 이내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봄철 미세먼지보다 지독한 시각 공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선거철도 아닌데 요즘 왜 이렇게 정치 기사의 댓글 창들과 같은 현수막들이 부쩍 많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법을 만드는 이들이 국회의원이니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해당 법을 만들었거나 개정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나뭇잎과 꽃잎 대신 정치 현수막이 나부낍니다. 포카혼타스가 노래하던 '바람의 빛깔'은 사라지고 대기는 바람에 퍼덕이는 수많은 현수막들의 광기어린 춤사위로 덕지덕지 채색되어 버렸습니다.
2평 남짓, 그 좁은 현수막 안에는 상대진영에 대한 폄훼와 분노, 그리고 대중을 향한 선동으로 가득합니다. 그 답답한 내용 때문에 하루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눈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공해의 찌꺼기가 들러붙습니다. 또한 이 수많은 현수막들이 결국 쓰레기가 되어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금수강산에 나뒹굴게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더욱 아려옵니다.
독일에서 지내던 시절, 곧 선거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은 고작해야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선거 포스터와 모퉁이에 조심스레 놓인 A자 모양의 간판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재 토론의 장은 그 어디보다 뜨거웠습니다. TV와 라디오에서는 웃고 즐기고 떠드는 예능프로그램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진지하면서도 뜨거운 정치 토론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했고 그 수도 많았습니다. 정치인들은 정치에 충실했습니다. 사람들은 정치를 소중히 여겼고 그들의 삶과 상식, 그리고 모두의 행복에 충실했습니다. 그것은 상식입니다.
영국의 작곡가 존 루터(John Rutter, 1945~)가 만든 합창곡 중에 '바라보라‘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라보라 주위의 모든 일들,
바라보라 놀라운 나날들,
바라보라 수많은 기쁜 일들,
우리의 생활 속의 기적들,
모두 찬양하라 창조의 주
우리 서로 나눈 큰 은혜
모든 축복 주께 받았으니
감사드리자!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봅니다. 놀라운 마음으로 생명의 신비함과 그 고귀함을 경탄합니다. 특정한 후회나 슬픈 기억에 사로잡혀있다가도 좀 더 멀고 높은 곳에서 지난 날을 바라봅니다. 결국 수많은 기쁜 일들이 우리의 삶을 점으로 연결시켜주며 지탱해 주고 있었음을 깨닫고는 인생에 대한 감격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에 사무치기도 합니다. 참을 수 없는 평범함에 둘러싸여 멍한 표정을 짓다가도 생활 속의 작은 기적들을 발견하면 기쁨을 얻습니다. 이처럼 바라보는 것은 기쁨이며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 귀에 대한 소음, 코에 대한 미세먼지, 입에 대한 바이러스만큼이나 눈에 대한 현수막에도 문제의식을 가져야겠습니다. 삭막한 도시여도 좋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무심한 얼굴도 좋으니 이제는 바라봐야 할 주위의 모든 일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조진호
https://youtu.be/otw_zbhd3gE
<iframe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 allowfullscreen="" frameborder="0" height="250" src="https://www.youtube.com/embed/otw_zbhd3gE" title="Look at the world - John Rutter, The Cambridge Singers, City of London Sinfonia" width="400"></ifr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