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칼럼]
깊은 상처에서 자유의 몸으로
임종환(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음악치료 교수)
성악가의 무대 공포증?
저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졸업한 후, 성악가로 무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40세가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대에서 연주 생활을 해오면서 많은 긴장과 불안으로 힘들었던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이어서 올라오는 생각이 난 무엇 때문에 무대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을까? 왜 그런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무대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계속 그런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그렇게 고민하다가 드디어 그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무대에서 관객이 쳐주는 박수 때문이었습니다. 연주가 끝난 후에 관객의 박수를 받을 때, 그때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고, 부모에게 평생 칭찬 한 번 못 받아 굶주린 제 깊은 목마름이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칭찬 굶주림
아버지가 여섯 살 때 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여섯 살에 가장이 되셔서 성인 아이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 시절부터 알코올중독자가 되셨습니다. 어머니는 무섭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날마다 술에 취해 사시는 아버지에게 저는 칭찬 한 번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만 하셔서 늘 피곤해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게 칭찬 한 번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삶이 너무 힘든 어머니는 결혼생활을 포기하고 자주 친정으로 가셨습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칭찬 한번 받지 못한 저는 칭찬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대에서 노래하면 박수를 쳐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칭찬의 배고픔을 무대에서 채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분노
이런 사실이 깨달아진 어느 날, 저는 칭찬에 굶주린 이 상처를 끝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께 이런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와 마음의 거리가 너무도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게 받고 싶은 인정과 칭찬에 굶주린 저는 많은 실망과 분노를 어머니에게 드러냈고, 어머니는 어머니보다 아내를 더 챙기는 제게 얼마나 많은 분노를 표현하셨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피차 주고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이 너무도 멀어져 있었지요. 어머니에게 효자가 되고 싶은데 끓임없이 올라오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저는 죄책감으로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금식기도도 수없이 하고, 치유프로그램에 여러 번 참석하면서 어느 날 제게 용기가 생겼습니다. 평생을 한 번도 못 들은 칭찬을 어머니에게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해결되지 못한 깊은 상처를 치유 받고 싶었습니다.
왜 칭찬 한번 안 해 주셨어요?
10월의 어느 날 밤, 저는 용기를 내어 어머니 방에 조심스럽게 노크했습니다.
“웬일이냐 이 밤중에.” (어머니)
저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니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임 교수)
“내일 말하지 뭐 하러 늦은 밤에 찾아와서 그래!” (어머니)
“오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임 교수)
“그럼 뭔 얘긴지 말해봐” (어머니)
“어머니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 교수)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냐?” (어머니)
“어머니가 평생 저를 낳고 키워오면서 저를 아들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여쭌 겁니다.” (임 교수)
“너, 내 아들로 괜찮지.” (어머니)
저는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칭찬하실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네, 제가 아들로 괜찮다고요? 어머니, 그런데 아들로 괜찮다고 생각하신 제게 왜 칭찬 한 번 안 해 주셨어요? 어머니가 제가 괜찮다고 하시니까 오늘 밤에는 어머니의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니 저를 칭찬할 게 있다면 칭찬 한번 해 주세요.” (임 교수)
난 못 한다!
어머니는 즉각 “못 한다” 그러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 제가 괜찮은 아들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칭찬을 못 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칭찬은 마음속으로 하는 거지 겉으로 하냐? 옛날 사람은 다 속으로 했어”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순간 저는 “어머니 입은 밥만 먹으라고 있는 게 아니고 입으로 칭찬도 하라고 만들어놓은 거잖아요. 어머니가 제가 괜찮은 아들이라고 하셨으니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니 칭찬 한번 해 주세요.”라며 저는 배고픈 어린아이가 젖 달라고 사정하듯이 졸라댔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그래도 못하겠다!” 그러시는 겁니다. 저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옛날 분들은 자식을 입으로 칭찬하지 않고 마음으로 하셨다는 점을 이해하겠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제가 괜찮은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오늘 밤에는 꼭 어머니에게 칭찬을 듣고 싶습니다.”
장하다 내 아들!
어머니 입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잠시 고민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나도 우리 아버지 엄마에게 한 번도 칭찬을 못 들어봤다. 그래서 나도 못 하겠다.”
저는 그 순간 번개같이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칭찬을 못 들어본 사람은 칭찬을 못 하는구나.’ 제겐 엄청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 어머니도 칭찬을 못 들어보셨군요. 이해하겠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어머니 안에 저를 칭찬하실 마음이 있으시면 제게 솔직한 마음으로 칭찬 한번 해 주세요”라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어머니는 고개를 떨궜고 눈시울을 적시셨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한쪽으로 약간 돌리면서 입술에 침을 바르기 시작하셨습니다. 분명 제게 중요한 얘기를 해주시려고 그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머니 입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장하다, 내 아들 훌륭하다!”
어머니의 음성은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머니는 울기 시작하셨고, 저는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을 울었습니다. 그 현장에 하나님의 치유 은혜가 임재하신 순간이었습니다.
치유와 자유
그 후로 어머니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회복이 되었고, 제 가족과의 관계도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후로 평생을 힘들어했던 무대 공포증도 사라지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목마름도 사라졌습니다. 부모에게 칭찬받지 못했던 깊은 상처로부터 자유의 몸이 된 것입니다.
<이 기사는 계간 ‘치유’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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