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맛집 시청 진주회관
한국의 여름은 냉면과 콩국수의 계절이다. 6월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식당마다 콩국수가 여름계절 메뉴로 등장한다. 콩국수를 좋아하는 나는 지난 한 주 동안 4번이나 콩국수를 먹었다. 내가 사는 이천에도 콩국수 맛집들이 몇 곳 있다. 그 에서 가장 맛있는 곳 한 곳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관고전통시장 안에 있는 소문난칼국수집이다. 칼국수와 면낙지집으로 유명한 노포이지만 여름에 판매하는 콩국수는 정말 맛이 있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콩국수 집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시청역 9번 출구 바로 뒤에 있는 진주회관일 것이다. 지난 월요일 점심에 진주회관에서 모임이 있었다. 진주회관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손님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 집을 찾으면 된다. 진주회관에서는 3월부터 11월까지 콩국수메뉴를 판매한다. 오픈 시간은 11시인데 영업시간 전에 이미 많은 이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보통 20~40분은 기다린 후 먹을 수 있을 정도이다. 오전 11시 30분에 약속을 하고 15분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실내에는 손님으로 가득 찼고 문 앞에 20여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이렇게까지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란 말인가?

진주회관은 1962년 개업이래 3대 째, 61년째 냉콩국수를 판매하는 집이다. 물론 삼겹살이나 차돌박이, 등심, 불고기 등 고기메뉴도 있고 부대찌개 비슷한 섞어찌개와 김치찌개, 김치볶음밥도 있지만 여름철에는 거의 대부분 콩국수를 먹으러 이곳을 찾는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백년가게(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업소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로 인정을 받은 업소이기도 하다. 이 집이 더 유명해 진 것은 2가지이다.
첫째는 삼성가의 단골집으로 이름이 났기 때문이다. 이병철 회장도 이 집을 좋아했고, 이건희 회장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가장 많이 찾은 식당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건희 회장이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심부름시켜서 사 오라고 한 일화도 유명하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진주회관 ‘포장단골’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서울시장들과 정치인들의 친필사인들이 가득하다.
둘째는 미국항공우주국 NASA 믹서기를 사용한다고 알려진 집이다. 장사가 너무 잘되다 보니 주변 경쟁업체에서 가짜 콩과 조미료를 넣어 만든다고 식약청에 신고를 했다. 12년 전 일이다. 이 제보를 받은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인 ‘먹거리 X파일’의 PD가 진주회관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었다. 당시 사장님은 진주회관에서 콩을 가는 믹서기를 나사와 계약을 맺어서 20년 전인 1992년에 원가만 1억 5천만 원 정도(지금가격 20억 정도)에 구입했고, 이 믹서기는 1분에 4만 5천 번 회전이 된다며 성능을 자랑했었다. PD가 그 믹서기를 촬영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사장님은 브랜드 가치만 천억 원이라며 천억을 주면 보여주겠노라고 하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아마도 사장님의 허풍이 좀 가미된 듯한 느낌으로 방송이 나갔지만 믹서기 모터는 나사에서 진짜로 개발한 것이 맞다고 한다.
40년 전쯤 나사 기금이 끊겨 재정난을 겪고 있을 때, 상표와 기술을 함께 팔았는데 이때 믹서기 회사가 나사와 계약했고 나사의 모터로 믹서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클리앙의 한 유저가 해당 믹서기가 정말 있는지 여러 가지로 검색을 해본 결과 바이타믹스라는 회사에서 만든 터치앤고 믹서기는 정말로 나사의 사운드 엔지니어가 디자인했다는 걸 찾아냈다. 게다가 37,000RPM의 속도가 가능하다고 하니 사장님이 이야기한 45,000RPM까지는 아니지만 얼추 맞아떨어진다. 정말로 1992년에 1억5천만 원을 주고 나사와 직접 계약을 한 건지는 사장님만 아는 진실일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선주문, 선결제를 해야 한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콩국수와 개인당 한 개씩 김치접시가 나온다. 보통 콩국수에 삶은 계란이나 오이나 토마토, 얼음 등이 고명으로 올라가 있지만 이 집은 아무것도 없이 콩국물과 면밖에 없다. 강원도에서 재배한 100% 순 토종 황태콩으로 만든 콩국물을 한 수저 떠 보니 국물이 정말 진하고 고소하다. 비린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특유의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이렇게 진한 콩국수는 처음 먹어보았다. 콩비지가 되기 직전의 콩물과 그 중간 지점의 어딘가의 농도로 꾸덕한 크림수프같은 비주얼이다. 따로 소금을 넣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간이 딱 맞았다. 나는 이것보다는 더 묽은 콩국물을 좋아하지만 아주 맛이 있었고 보약을 먹는 느낌이었다.
면은 소면에서 중면 사이의 적당한 두께감에 쫄깃하고 탱탱한 느낌이다. 사람마다 면에 대한 취향이 다 달라서 어떤 이는 소면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중면을 좋아하는데 이 집 면은 누구나 좋아할 것 같다. 반찬은 국내산 배추로 만든 김치뿐이다. 갓 담근 듯한 김치는 설탕맛이 강했지만 콩국수와 조합이 아주 좋았다. 김치와 함께 먹으면 간이 딱 맞는다.
다 먹고 나니 맛도 감동적이고 뭐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딱 한 가지가 있다면 가격이다. 15,000원,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싸다.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비싼 콩국수일 것이다. 우리 동네 콩국수 맛집도 국내산 콩을 갈아서 맛있게 나오는데 가격은 9,000원이다. 서울 한복판이고, 유명세가 있고 아무리 나사기술로 콩을 갈았다고 해도, 13,000원 정도면 적당한 가격일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40분씩 손님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하루에 4,000그릇 이상 판매될 정도라고 하니 사장님 입장에서 가격을 낮출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찾는 진주회관 콩국수를 먹어보았으니 맛에 대한 궁금함이 해소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동네 콩국수 맛집에서 9,000원을 주고 먹을 땐 감사함이 더욱 넘치게 되었다. 그러나 어쩌다 서울 중구에 오게 될 일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줄을 서서 15,000원 주고 또 한 그릇의 콩국수를 사먹을 것 같다.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