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하느님!》 (Oh, God!, 1977)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만일 하나님이 지금 현대에 나타나신다면 어떨까? 심지어 나를 만나기 위해 나타나셨다면? 게다가 내게 나타나신 이유가 저 옛날 선지자들에게처럼 사명을 안겨주시기 위해서라면? 기독교인들이라면 한 번쯤 떠올릴 법한 이런 상상을 창작자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이런 영화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2003년 짐 캐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일 것이지만 이보다 훨씬 오래전 이런 소재를 다루었던 영화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1977년에 만들어진 《오, 하느님!》이라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사람은 당시 유명한 팝 가수인 존 덴버였다. 1970년대 만인의 영혼을 맑게 위로해주었던 감미로운 미성의 소유자 존 덴버, 그의 수많은 히트곡 중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Sunshine On My Shoulder”를 비롯해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와 듀엣으로 부른 “Perhaps Love”에 이르기까지 ‘팝계의 극단적 낙천주의자’라는 별명을 지닌 그의 노래는 젊은 시절 무거운 삶으로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제와도 같았다. 존 덴버는 가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그 중 한 편이 바로 《오, 하느님!》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는 《브루스 올마이티》의 시조격이 되는 영화다. 하나님이 직접 모던한 인간 세상에 내려와 한 인간을 만나고 그에게 사명을 맡긴다는 설정의 최초 영화인 셈이니 말이다. 슈퍼마켓의 어시스턴트 매니저인 주인공은 두 자녀를 둔 행복한 가정의 가장으로 착하고 성실한 평범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하나님으로부터의 인터뷰 제안 편지가 날아든다. 장난으로 여겨 찢어버려도 어김없이 다시금 돌아오는 편지를 보고 그는 결국 약속 장소로 나가 인터폰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인터폰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니,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면 과연 믿어질 만한 소린가? 그의 입에서는 탄식만 나올 뿐이다. “맙소사!” 바로 이 ‘맙소사!’에 해당하는 영어가 영화의 제목인 “Oh, God!”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애써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도 집요한 하나님은 결국 키 작은 한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에게 성스러운 임무를 부여한다. 그 임무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나는 존재한다.” “너희는 세상을 더 망치지 마라.” “필요한 건 다 주었으니 세상이 잘 돌아가도록 해라.” 주인공은 미칠 지경이다. “왜 하필 납니까? 난 믿음이 없어요.”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난 교회 소속도 아니에요.” 그러자 하나님은 대답하신다. “나도 그래.” 모세에겐 증거로 돌 판이라도 주지 않았냐는 주인공의 항변에 모세는 기억력이 나빠서 그랬다고 말씀하시는 유머러스한 하나님이 신문에 자신의 메시지를 내라며 증거로 내민 것은 달랑 ‘GOD’라고만 적힌 명함 한 장뿐이다.
그 후 주인공이 겪을 해프닝을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광신도들을 소개하는 가십난에 겨우 실린 주인공의 말은 어찌어찌 점점 매스컴을 타게 되더니 일약 전국의 집중을 받게 되고, 급기야는 교계 지도자들로 이루어진 신학자들로부터 검증을 받기에까지 이른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하나님의 말을 따라 유명한 부흥사 목사를 비난한 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다. 그를 위해 마지막 증인으로 재판에 모습을 드러낸 하나님 덕에 무죄판결을 얻어내긴 했지만 결국 주인공은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고 직장에서 쫓겨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 실패한 거죠?”라는 주인공의 낙담 섞인 말에 하나님은 대답하신다. “무슨 소리야? 우린 훌륭히 해냈어.” 메시지를 전하고 씨를 뿌렸으니 이제는 지켜보자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영화 속에 등장한 도수 높은 뿔테 안경의 키 작은 노인 하나님은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말들을 하신다. 놀랍게도 이 하나님과 주인공이 나눈 대화들은 지금 시대에 들어도 그리 낡지 않다. 4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야말로 이 영화를 지금 보아도 좋을 충분한 이유다. 생각거리를 던져준 많은 말들 중 유독 가슴에 남은 말은 다음의 말이었다. “너희들이 필요한 건 다 줬단다.” 여전히 다양한 욕망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나의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고, 세상을 바꿀 힘을 달라고 구하는 우리의 모습을 부끄럽게 만드는 말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