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 묵상(默想)
요단강((히브리어: נהר הירדן 네하르 하야르덴, 아랍어: نهر الأردن 나흐 알-으르둔))은 본래 요르단(Jordan)강으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 발원(發源)하여 갈릴리 호수를 거쳐 사해(死海)로 흘러 들어가는 총 길이는 약 251km의 강이다. 건기에는 폭 30m, 깊이 1m에 불과하지만, 우기에는 최대 폭 1.6km, 깊이는 3~4m까지 깊어지는 수면의 높낮이 차이가 큰 강이며, 요르단(Jordan)이란 나라도 이 강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요단강은 계절에 따라 수량이 변하며 봄철 발원지인 헬몬산 눈이 녹아 수량이 많아져 범람하는 경우가 많다. 요단강은 갈릴리 호수와 함께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수자원이며 사해까지 흘러들어가 사해의 수원이기도 하나, 오늘날은 인근 지역의 농업 등 다양한 산업용 용수로 사용되고 있어 그 물의 흐름은 적다.
성경에 등장하는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본래 "약속된 축복의 땅으로 들어간다 "는 의미로서 요단 건너 약속과 축복의 땅 가나안 지역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가나안 지역은 이스라엘인의 시조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후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인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고 2세대들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구약 시대에 요단강은 기적의 장소였다. 첫째 기적은 출애굽한 백성들이 요단을 건널 때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강에 발을 옮기자 강물이 멈추어 선 것이다(수 3:16-17). 강물이 멈추어선 이야기는 이후에도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와 함께 요단강을 건널 때와 엘리야가 겉옷을 말아서 물을 치니 물이 갈라지고 여리고 맞은 편 요단강을 건넜다(왕하 2:8). 엘리야를 하늘로 보낸 후, 엘리사가 다시 강을 건너 여리고로 돌아올 때 엘리야가 두고 간 겉옷을 내려치니 강의 물줄기가 다시 한번 섰다(왕하 2:14). 요단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요르단의 자연 경계이며 물리적 장벽이요 국경이며 비무장 지대다. 성경 시대에도 요단강에서는 수많은 전쟁과 단절, 분쟁이 이어졌다.
요단강에서 일어난 가장 큰 기적과 같은 사건은 예수님의 세례다. 죄로부터의 단절과 새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 요한의 세례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에 오셨다(요 1:28).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3~15)고 쓰였다. 요단강 세례는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출발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요단강을 순례한 사람들은 그 수량이 적고 색깔이 맑거나 푸르지 않음에 다소 실망하게 된다. 계절적으로 수량이 변화하는 이스라엘에서 강물로서 수량은 덜 중요하며 적게라고 지속적으로 흐르는 것이 중요하다. 요단강을 순례하며 다음의 몇 가지를 묵상(默想)하게 되었다. 먼저, 강물의 주요 역할은 물이 흘러 풀과 나무 및 농작물에 물을 제공하는 것이다. 시편(1편)에서처럼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꽃피고 열매 맺게하는 것이다. 둘째, 강물에는 인접하여 일정한 공간이 있어 물가에 사람과 동물들이 머물러 물을 마시고 쉬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도시와 문명이 강변에서 일어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셋째로 강물과 관련하여 생각되어지는 것은 우리가 강을 건너야 한다는 일이다. 강은 보통의 경우 통행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스라엘인 1세대가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고, 2세대들이나 건너간 것이 좋은 예다. 구약에서 하란에서 돌아오던 야곱도 요단을 건넜고, 여호수아와 함께 출애급한 이스라엘 민족들, 기드온 같은 사사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하던 다윗왕도, 암몬성 공략 작전에 투입된 헷사람 출신 우리야도, 요단강을 말린 엘리야와 엘리사도,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던 느헤미야와 백성들도, 회개의 세례운동을 편 세례 요한도, 수많은 박해를 겪으셨던 예수님도 요단강을 건너셨다. 넷째, 강물은 궁극적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섯째,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낌없이 주는 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헬몬산과 시리아에서 발원하여 큰 물줄기와 힘찬 흐름을 유지하던 요단강은 갈릴리 호수를 이루고 이어 흘러내려 요단강의 흐름을 유지한다. 그런 흐름은 인근의 농업용지와 다양한 농작물의 경작에 필요한 물을 제공한다. 이스라엘은 발전된 다양한 관개(灌漑)기술과 수공학적 장치로 사막에 물길을 내고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풍성한 농업 생산을 이루고 있다. 이스라엘 도처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고, 넒은 지역에 종려나무 단지들이 조성되어 바람에 종려가지를 흔들고 있다. 이런 식물들 밑에는 늘 정교하게 물을 전달하는 호스 등 시설이 잘 갖추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요단강은 이렇게 선진 기술을 통해 사막에 길을 내고 물을 흐르게 하며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사 35,6~7)을 이루고 있다고 보인다.
요단강은 이렇게 “아낌없이 주는 강”으로서 이웃과 나라를 위해 헌신 봉사하며 조국의 험난한 지리적, 기후적 여건을 극복하는 데 탁월하게 사용되여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양이 성경의 참 의인의 모습이 아닌가 묵상하게 된다. 큰 강에 비교해 작아 보이는 이 요단강도 처음 크고 힘차게 시원(始原)해 흐르다 주변의 사막으로 농경지로 때론 지하로 흘러들어가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참 교회와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하진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인천기독교신문에도 기고함)
김홍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