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여 뜻대로
조진호
시편 70편을 묵상하다가 특이하고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시70:3)’ 이 구절에서 쓰인 ‘아하, 아하’라는 표현은 의성어로서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조롱하고 기뻐하는 비웃음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편 70편은 시편 40:13~17과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편 40편에는 해당 구절이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나를 향하여 하하 하하 하며 조소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놀라게 하소서(시40:15)’ ‘아하, 아하’나 ‘하하 하하’ 모두 히브리어 의성어 ‘헤아흐 헤아흐’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쯤에서 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다윗으로 알려진 이 시편의 시인은 왜 이같이 특이하고 다소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의성어를 그의 기도에 사용한 것일까요?
우리에게는 저마다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날카로운 한 마디나 나의 실수와 고통과 불행을 조롱하고 기뻐하는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귓전에 생생하게 품고 살아갑니다. 무심코 그 말을 던진 사람은 기억하지도 못할 유치하기까지 한 말 한마디가 우리 마음에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시편 시인은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의 그 소리를 끌어내게 하기 위해 그와 같은 의성어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나 아픔보다 우리의 이야기들을 가십거리로 삼아 설왕설래에 담아내는 사람들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곤 합니다. 시편 70편의 시인은 그런 마음마저 남김없이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토로하고 있는 것이지요.
카를 마리아 폰 베버(C. M. von Weber, 1876~1826)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ütz)’의 1막 첫 부분에도 이와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마탄의 사수’의 주인공은 막스입니다. 사냥꾼인 막스는 장차 산림 감독관이 될 후보요 현직 감독관의 딸 아가테와 결혼할 예정이지만 최근 들어 사격 실력이 제대로 받쳐 주지 못해서 위기감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오페라의 서곡이 끝나고 첫 막이 오르자마자 농부인 킬리안의 소총이 불을 뿜고, 표적으로 놓인 마지막 별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사냥꾼 출신으로서 농부에게 패배한 막스는 술잔을 앞에 놓은 채 절망감에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이어서 총쏘기 대회의 승리자가 된 농부 킬리안의 대관식이 해학적으로 펼쳐지고 킬리안과 동네 사람들은 막스를 조롱합니다.
“Gleich zieh’ Er den Hut, Mosje, Hat Er Augen nun, Mosje? Was traf Er denn, he, he, he?/당장 모자를 벗어 이 사격 왕에게 예를 갖추시오 나으리, 나으리는 눈이 있으시기나 하신가요? 도대체 뭘 맞추신 걸까요? 헤헤”
이 장면에서 모든 사람들이 ‘헤헤헤헤헤...’하며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작곡가 베버는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이후 전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처를 입고 모욕을 당한 막스는 카스파르의 꼬임에 넘어가 결국 흑마법의 사냥꾼 자미엘(Samiel)에게 영혼을 팔고 무엇이든지 맞출 수 있는 마법의 탄환(Freikugel)을 얻게 됩니다. 자칫하면 비극으로 치닫게 될 이 이야기는 아카테의 희생과 기도 그리고 지혜로운 은자의 개입으로 해피앤딩으로 끝납니다.
오페라의 주인공 막스의 모습은 시편 70편의 기도자의 마음이나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상황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우리는 세상의 조롱과 손가락질을 받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기도자처럼 그 마음 그대로를, 그 때 들은 그 소리를 그대로 하나님께 토로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시70:1~2)’
하지만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주인공 막스 처럼 우리 또한 같은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세상의 힘과 세상의 방식에 영혼을 팔아서라도 성공과 번영을 쟁취함으로 그들에게 칭송 받고 그렇게 앙갚음하고 싶은 유혹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서 펼쳐지고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마음을 다 주께 드리니'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의 원곡은 오늘 우리가 만난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서곡의 도입부입니다. 사냥꾼의 뿔나팔에서 유래된 네 대의 호른이 깊이 있는 화음을 이루며 뿜어내는 멜로디는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는 이 찬송가의 가사와 너무나도 잘 어울립니다. 이 찬송가의 편곡자는 이 오페라의 내용과 화재로 두 아이를 동시에 잃고 이 찬송시를 쓴 벤야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목사님의 이야기를 깊이 이해한 가운데 이 찬송시과 마탄의 사수 서곡을 연결 시켜 이 아름다운 찬송가를 만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시편 70편에는 또 다른 놀라운 내용이 있습니다. 이 친밀하고 짧은 기도가 개인의 토로와 간구로 끝나지 않고 주를 찾는 모든 자들에게 임할 은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70:4)’
세상의 조롱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우리의 올바른 기도와,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사랑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youtu.be/pIhKnzgFs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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