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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2]
 
 
 
     
 
 
 
작성일 : 23-04-20 00:30
   
소여리의 사월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355 [127]

 

소여리의 사월

 

감자 싹이 올라오고 있다. 까만 비닐을 뚫고 짙은 녹색의 싹은 귀엽고 앙증맞고 싱그럽기 그지없다. 마늘밭은 수확하려면 아직 두 달 정도 남았는데 마늘대가 성인 손가락 굵기만큼 실하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오르고 있다. 사방팔방을 둘러보면 새순 단계를 넘어 벌써 녹음이 서서히 내려앉아 가고 있다. 지난주에 한번은 종일 이슬비로, 또 한번은 두어 시간 동안 폭포수 같이 내렸던 비의 합작품이다. 

 

아랫집 빈집엔 주인은 없으나 쌍벚꽃이 이제 꽃잔치를 열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붙잡고 있다. 담장 안의 쌍벚꽃은 그저 한그루에 불과한데 세월을 오래 머금어 집을 삼킬 정도로 자라서 이맘때면 집은 안보이고 꽃만 보이게 했다. 그리고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나무에서 빛이 났다. 겹으로 쌍으로 온 힘을 다하여 핀 꽃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반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그곳을 지나갈 때면 저절로 발길은 굼뜨기 시작하고, 입은 연신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우리 마을은 복숭아가 많다. 지금이 복숭아꽃이 한창 만발할 때다. 가지마다 연분홍으로 물들인 꽃들도 앞선 쌍벚꽃처럼 나의 눈에 호사를 안겨준다. 산책을 하는 길에 잠시 멈춰 바라보면 환상적인 경치다. 창문을 열면 눈 앞에 펼쳐진 복숭아꽃을 마주하는 것도 볼거리다. 이맘때면 굳이 미술관에 갈 필요도 없고 그림책을 펼칠 이유도 없고 옛 그림이 그려진 달력을 보며 미소를 지을 것도 없다. 지금 소여리의 4월에 비친 모습은 모든 것이 미술관이요 그림책이요 달력이다. 오히려 그것들보다 더 생생한 것을 눈과 마음에 담으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눈과 마음의 여유를 깨트리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풀이다. 두 번의 비는 풀에게도 엄청난 수혜를 입혔다.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올라오는 풀은 이제 예초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줬다. 예초기를 손봐야 할 때고, 낫을 갈아놔야 할 때다. 지난번 낫으로 꽃들을 가린 풀들을 베었는데 내가 풀을 베는 것인지 풀을 뜯어내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날이 무뎌 있었다. 어제는 집 뒤의 비탈진 곳에 억세가 올라오는 한삼덩굴을 뽑아냈다. 이런 풀은 어릴 때 뽑아줘야 제거가 잘 된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줄기에 잔가시가 돋아나 잘못 만졌다가 스치기만 해도 금방 벌건 상처를 입어 쓰라림을 면할 수 없다. 또 보일 때마다 제거하지 않으면 나중엔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온통 덮어버려 나무를 죽게 하는 수도 있다. 한삼덩굴이 좋은 약재로 쓰인다고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저 제거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우리 마을에 복숭아가 많다고 하지만 이것을 관리하는 농부는 그래봐야 딱 두 명이다. 한 명은 태어날 때부터 농사를 지으셨을 것으로 보이는 천상 농부이고, 다른 한 명은 20년 되었을까? 한참 귀농 바람이 거세게 불 때, 그때 귀농한 농부다. 천상 농부는 관행농법으로, 귀농한 농부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어려운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복숭아를 재배하고 있다. 나와 같은 한량에게는 난개한 복숭아꽃이 아름답기 그지없으나 복숭아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는 그저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가지에 몇 개 남지 않을 정도로 훑어 없애지 않으면 크고 올바른 모양의 열매를 수확할 수 없다. 처음에는 꽃이 예뻐 차마 적과하지 못했을 것인데 한두 해 경험하다 보면 솎아주는 것이 나무나 농부에게 이득인 것을 터득하게 되니 그 이후론 참담하리만큼 따버린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예쁜 복숭아꽃이 가까이 가면 엥? 할 정도로 휑함을 보게 된다. 때론 아름다움엔 아픈 과정이 서려 있다. 꽃들을 솎아냈으니 이제 봉지를 씌울 때가 다가온다. 

 

어느새 4월 중순을 넘어섰다. 변덕스런 날씨도 차츰 정상으로 회복되어 가는 듯 하다. 뜨거워지는 햇살 아래서 밭을 갈 때가 온 것이다. 그때는 꽃들보다 심은 작물에 눈과 마음이 더 빼앗길 것이다. 몸과 마음이 바빠지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 남지 않은 사월의 이 순간이 여유를 부리기 딱 좋은 시절일 수 있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야 할 5월이 오기 전, 내 눈과 마음과 발길을 머물게 하는 10여 일의 소여리 4월을 잘 보내주도록 하자.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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