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만?
따뜻한 봄이 와서 몸이 근질거리는 것은 다들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남선교회 회원들과 주일 점심 먹고 족구를 하러 나갔습니다. 봄바람에 황사도 버스럭거리고 아직 조금 쌀쌀하지만 햇살이 좋아 공을 차는 성도들 얼굴에 웃음이 있습니다. 네트 하나 쳐놓고 아이들도 같이 동참해서 연습게임을 하고 있는데,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각종 장비를 다 들고 온 팀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교회에서 나왔다고 하니, 그쪽도 지역에 이름난 큰 교회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오후 2시부터는 그 팀에서 경기장을 쓰겠다는 투로 말을 했습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몇 년째 이 공터 족구장을 사용해 왔으며, 구청에 건의해서 시설도 보완해왔었노라고 공치사를 하는 것 보니 비켜달라는 말로 들립니다. 상대팀 제안으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경기 결과는 뻔했습니다. 아주 큰 점수 차로 져서 결국 생각보다 일찍 운동을 그만 뒀습니다.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들이 차 뒷좌석에서 제게 경기 중에 벤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는데 내심 놀랐습니다.
“아빠! 아까 그 아저씨들이 경기하고 있는데 ‘에이 못하네!’ 그랬어요.”
“그래? 그 분들이 우리 아들들 듣고 있는데 말씀 편하게 하셨구나?”
아빠의 맞장구에도 분이 풀리지 않던 아들이 이내 덧붙였습니다.
“그분들은 교회에서만 집사님이신가봐요.”
순간 실소가 났지만 식은땀이 흐를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가끔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해서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애들 앞에서 물도 못 마시겠다’던 집안 어른들 말씀도 생각납니다. 어린 마음에 아빠가 열심히 뛰고 있는 팀이 힘도 제대로 못써보고 지고 나니 호승심이 작동했겠지만 서로가 누구인지 아는 마당에 속에 있는 조롱 섞인 말을 아이들 앞에서 조심성 없이 흘렸던 집사님이 왜 그랬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집사님 언어습관을 바꾸는 것보다 내가 족구 연습을 맹렬히 해서 실력을 키우는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도 스쳐갑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고작 족구 한 게임에서 이른바 저를 포함한 믿는 사람들의 바닥이 어린아이들 눈에도 훤히 보이는 것 같아 더 그랬습니다. “교회에서만 집사님...” 큰아들 말이 계속 귓전에 맴돌았습니다.
교회에서만 그런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집사님만 해당 되지 않습니다. 목사인 저에게도, 헌신과 봉사의 본이 되시는 장로님도, 기도 많이 하시고 인자하신 권사님도 예외일수 없습니다. 그렇게 예수님 잘 믿는다는 아빠 엄마가 가정과 일터에서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아닌 모습으로 살 때, 그것을 지켜보는 자녀들, 동료들, 손윗사람, 손아래 사람들에게 혼돈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교회에서 목사인 내가 아이들과 둘러앉은 식탁에서, 아내와 주고받는 대화에서, 운전대를 잡고 길을 가면서, 식당과 마트, 주유소 직원에게 말을 건네면서 어떤 사람인지 기억을 죄다 더듬어봅니다. 굳이 세상 끝날, 종말까지 갈 것 없이 언젠가 아들이 장성하여서 생각할 아빠는 어떤 모습일까요? 교회에서와 같이 집에서도 목사일까요? 거리의 전도자로 선포하는 말 그대로 내가 믿고 살고 있는지 되물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인자한 말로 권하는 목회자의 모습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그런 아빠로 목사로 기억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무심한 보도에도 뜨끔했던 허술한 사람이 정말 마지막 때에 가서 ‘너는 교회에서만’으로 압박 해오실 분의 심리(審理) 앞에 견뎌낼까 심히 두렵습니다.
신현희 / 안산나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