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사랑스런 십자가여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순절입니다. 저는 종종 자신을 구레네 시몬과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마태복음 27장, 구레네 시몬은 주님의 수난 이야기에서 짧게 등장하지만 그가 남긴 여운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흐는 마태 수난곡에서 그가 등장하는 장면 뒤에 ‘오라 사랑스런 십자가여/Komm, süßes Kreuz’라는 매우 깊이 있고 아름다운 곡을 남기었습니다.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마 27:32)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 주변에서 서성이던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자원해서 십자가를 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얼떨결에 아니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게 된 십자가임에도 그의 삶에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이요 가문의 복이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병행 구절은 구레네 시몬을 일컬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은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가 초대교회 마가 공동체에서 누구나 알 만한 중요한 인물로 성장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또한 로마서 16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당부합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 16:13)
아들들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역시 사도 바울의 어머니와 같은 위대한 여종이 되어 초대교회를 섬겼습니다. 제 상상입니다마는, 아마 그맘때에는 구레네 시몬이 세상을 떠났기에 그를 향한 안부가 없었을 뿐, 구레네 시몬 또한 사도 바울의 영적 아버지로서 그를 사도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얼떨결에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시몬의 가족은 그렇게 복된 가문이 되어 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저 또한 구레네 시몬과 같이 얼떨결에 십자가를 졌습니다. 목회 초년 시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저는 은근히 인기 많고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화교회연구소로부터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관한 사순절 묵상집을 집필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얼떨결에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3개월 넘게 책을 쓰면서 저는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의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거의 매일 눈물을 흘리며 책을 썼습니다. 그 후로 저의 신앙과 목회관은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얼떨결에 혹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된 사람에게도 십자가의 능력은 임합니다. 십자가의 초청은 큰 은혜요 영광입니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에는 구레네 시몬이 등장한 후에 다음과 같은 가사의 베이스 아리아가 등장합니다. 아마 그 베이스의 음성은 구레네 시몬, 아니 십자가의 길에 들어선 우리 모두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Komm, süßes Kreuz, so will ich sagen,
Mein Jesu, gib es immer her!
Wird mir mein Leiden einst zu schwer,
So hilf du mir es selber tragen.
오라 사랑스런 십자가여, 나 그렇게 말하겠노라
나의 예수여! 언제든지 내게 십자가를 주소서
나의 고통 견딜 수 없을지라도
주여 나를 도우사 그 십자가를 지게 하소서
그 사건 이후 십자가는 구레네 시몬의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게 된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Komm, süßes Kreuz. Mein Jesu, gib es immer her!/오라 사랑스런 십자가여. 나의 예수여 언제든지 내게 십자가를 주소서”
파블로 카잘스의 손에 쥐인 듯한 첼로의 활이 메마른 우리의 영혼에 활을 그으며 스파크를 냅니다. 그 작은 불꽃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하나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냅니다. 그 영혼의 노래에 진심 어리고 진중한 고백과도 같은 베이스 목소리가 함께 하며 사랑스럽고 달콤한 십자가를 노래합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가 ‘영광의 신학’을 대표한다면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십자가의 신학’을 대표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교회에 십자가를 건너뛴 영광의 신학과 영광의 노래만 가득하게 될 때, 우리는 삶과 신앙의 진실과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길을 홀로 걸으심으로 우리에게도 그 길을 열어 보이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길을 따라야 할 때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중심, 우리 삶의 중심, 우리 생명의 중심입니다. 십자가는 능력이 있어 얼떨결에 진 사람에게도, 억지로 진 사람에게도 역사합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의 사람으로 가다듬어지고 십자가의 능력을 덧입는 가운데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가문이 복음 역사의 복된 가문으로 쓰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ssJUC4jK6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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