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와 삼각김밥
더 글로리 파트2가 지난 3월 10일 공개되었다. 이 드라마는 학교폭력 피해자인 주인공 문동은이 성장해서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파트2를 3개월 동안 기다렸던 전 세계 시청자들은 주인공 문동은의 통쾌한 복수에 열광한다.
문동은 식의 철저하고도 정교한 응징은 판타지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유는 현실에서 이런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오만한 권력자들이 법을 무시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을 드러내며 지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자식의 학교폭력을 무마하면서도 공직에서 잘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그 아버지가 정의를 구현하는 검사라는 것에 별로 충격을 받지도 않는다. 힘 있는 이들은 뭘 해도 용서되는 게 당연한 듯이 여기고 넘어가는 우리들은 어쩌면 이 모순을 끌어안으려고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다양한 시각에서 이 드라마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삼각김밥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분들은 생소하게 여겨질 수 있을 것 같으니 추후 한번 보시기 바란다. 문동은의 복수를 돕는 주여정과의 첫 만남의 장면인 병원에서 문동은은 영양실조상태라고 밝혀졌다. 그녀가 무언가 먹는 장면에서 음식은 주로 삼각 김밥, 또는 김밥이 등장했다. 삼각김밥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간단하게 허기를 때울 수 있는 간편식이다 보니 영양을 온전히 챙기기엔 부족한 음식이다. 건강이 나쁜데도 그녀가 삼각김밥으로 연명하는 이유는 학교폭력으로 문동은이 불로 익힌 음식을 가까이 할 수 없다고 하여 그런 것으로 나온다. 그녀가 먹는 삼각김밥과 영양실조는 안으로 문드러진 또 다른 폭력의 상처였던 것이다. 가해자들은 기억나지 않는 당시의 폭력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말려버릴 정도로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각김밥은 마지막 회에 또 등장한다. 가해자 박연진의 남편인 하도영은 박연진과 이혼하고 난 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었다. 이전에 그가 문동은과 편의점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그는 탄수화물을 잘 섭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굳이 이날 삼각김밥을 먹는 장면을 보여준 것은 분명히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였다. 삼각김밥을 먹는 것은 하도영이 가진 가치관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도영은 박연진이 어쩐 잘못을 저질렀고 본성이 어떤 인간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박연진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었다. 이것은 박연진과의 이혼이 자기한테 손해라는, 순전히 이성적인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예솔이가 자기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박연진과 헤어질 이유가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도영은 학교폭력과 불륜, 그리고 친자가 아닌 자식까지도 품어볼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하도영도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일이었다. 박연진이 아무리 최악의 인간이었다고 해도 사람까지 해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박연진이 사람 목숨을 해치는 범죄를 두 차례나 저지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도영은 박연진에게 또다시 기회를 주었다. 자신이 죽인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죗값을 받던가. 이혼을 하던가. 선택의 기회를 주었지만 박연진은 그 기회를 차버렸다. 결별을 하던 그 순간까지 하도영은 자기 가치관이 뚜렷했던 사람이었다. 사람을 죽인 일마저 박연진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박연진과 헤어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문동은의 행복을 바라는 하도영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도영의 가치관으로는 문동은의 복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도영이 삼각김밥을 먹은 건 박연진한테 이혼서류를 받고 나온 시점이었다. 이 사건 바로 전에 나온게 전재준의 교통사고였다. 삼각김밥을 먹고 있던 이 날은 하도영이 전재준을 죽인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하도영은 원래 복수나, 목숨을 해치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이야기의 마지막에 와서는 자기 손으로 그런 짓을 저질러버린 사람이 되었다. 하도영이 문동은처럼 삼각김밥을 먹는 장면은 하도영의 가치관이 문동은이와 닮아갔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평생 유리한 삶을 살아왔던 하도영이 문동은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고 이해하게 되었다는 걸 말해주는 장면인 것이다.
나는 이전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먹어 본적이 거의 없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4가지 종류의 삼각김밥을 구입해 먹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삼각김밥은 1990년대 초 세븐일레븐에서 처음 판매된 ‘파리코’라는 명란이 들어간 삼각김밥이다. 당시 컵라면이 500원정도였는데 삼각김밥은 개당 900-1000원으로 상당히 비싼 가격에 맛도 별로여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세븐일레븐에서 1999년에 출시한 참치마요 삼각김밥은 전설의 탄생이었다. 참치와 마요의 궁합도 좋지만 양쪽으로 찢는 포장지의 새로움도 한몫을 했다. 지금도 1위는 참치마요삼각김밥이다. 이 삼각김밥이 2000년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세븐일레븐의 매출1위는 삼각김밥이었다. 길거리에서 응원하다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편의점 삼각김밥이 아주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삼각김밥 등장이 편의점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많다.
현재 CU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삼각김밥종류를 세어보니 29가지 종류이다. GS25편의점도 비슷할 것이다. 최근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 먹는 삼각김밥 5가지는 다음과 같다. 1위는 참치마요(39.9%) 2위는 전주비빔밥(14.6%), 3위는 참치김치볶음(13.3%), 4위는 소고기고추장(9.1%), 5위는 스팸 김치볶음(7.1%)이다. 삼각김밥도 안드셔본 분이 계시면 지금 소개한 5가지제품을 구입한 뒤 더글로리를 감상하면서 드시기를 권한다.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