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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3-13 23:42
   
TAR 타르 (Tár, 2022)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6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130 [111]


 

TAR 타르 (Tár, 2022)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모든 문학과 예술은 영감을 필요로 한다. 그 영감이 작가를 감동시키고 우리는 영감으로 빚어진 작가의 작품을 즐긴다. 그것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소설이든, 시이든 창조와 관련된 작업은 모두 이 과정을 거친다. 그리하여 위대한 작품들은 언제나 빛나는 영감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영광의 광휘를 영원토록 발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만일 영감을 받아 작품을 완성한 작가가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작품을 아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까? 인간적 문제의 정도가 심할수록 그리고 작가와의 시간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우리는 선입견 없이 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것은 예술과 예술가의 분리라는 꽤 고전적인 문제다.

 

우리는 이런 사례들을 지금도 쉽게 발견한다. 한국의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노시인은 추잡한 성추행을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알고 난 이상 과연 그의 시를 그의 도덕성과 따로 떼어놓고 거리낌 없이 칭송할 수 있을까? 《피아니스트》 같은 감동적인 영화를 남긴 세계적인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아동 성범죄자로 드러났다. 그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라고 해서, 영화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해서 그의 범죄를 알고도 아무런 편견 없이 그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까? 비슷한 논리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도 발생된 적이 있었다. 4세기 교회사에 등장했던 도나투스 논쟁이 그것이다. 배교를 하거나 이단으로 빠진 성직자가 베푼 세례가 과연 유효한 것일까? 긴 논쟁 끝에 교회는 만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가 거행되었다면 세례를 베푼 자의 도덕성이나 인격은 세례 자체의 유효성과는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술가와 그의 작품은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과 비슷한 논리였다.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영화 《TAR 타르》는 리디아 타르라는 여성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영화는 실제와 허구를 절묘하게 연결시켜 지금도 존재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레너드 번스타인 같은 수많은 지휘자와 연주자들을 타르와 연결시킨다.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수석 지휘자이자 작곡자인 타르는 말러의 교향곡 전곡 중 코로나 사태로 연기되었던 단 하나 남은 교향곡 5번의 실황 녹음을 목전에 둔 상태다.영화의 초반 장면에서 타르는 줄리어드의 한 마스터클래스에서 바흐는 여성 혐오적이기에 그의 음악은 듣지 않는다는 학생을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작곡가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그의 음악은 별개라는 주장을 타르는 집요하게 그리고 위압적으로펼친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주장은 앞으로 영화 속에서 펼쳐지게 될 그녀의 인간적 문제, 즉 그녀가 권력의 정점에서 젊은 음악가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모습과 겹쳐진다. 결국 예술과 예술가의 분리라는 그녀의 믿음은 자기합리화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리디아라는 이름 역시 린다라는 평범한 미국식 이름을 유럽식으로 바꾼 것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허위와 허영, 권력과 탐욕으로 가득 찬 타르의 삶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몰락의 길을 걷는다. 본질적으로 《TAR 타르》는 음악 영화라기보다 권력에 관한 영화다. 성스러운 예술과 비속한 인간 본성, 그 성(聖)과 속(俗) 사이에서 인간이라는 음표로 만드는 권력이라는 음악, 말하자면 영화는 이런 의미에서의 예술 영화다. 영화에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철자를 바꾸는 놀이, 즉 애나그램(anagram)이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 TAR가 RAT, 즉 쥐로 변주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그녀의 이름 철자는 예술을 뜻하는 ART로도 변주될 수도 있다. 결국 영화는 주인공 TAR가 숭고한 ART에서 더러운 RAT으로 몰락하는 과정이라고도 불 수 있다.

 

몰락한 타르는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로 가 지휘봉을 잡는다.그리고 의도적으로 연출된 한 마사지 살롱의 장면에서 타르는 자신이 지금껏 해왔던 일의 실체를 비로소 깨닫고 자기혐오로 인해 구토한다. 이 깨달음이 그녀를 구원의 길로 이끌었을까? 음악이라는 시간을 지배하던 타르에게 그에 맞춰 지휘해야 할 헤드폰이 씌워지며 이제 시간에 지배당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마지막 장면은 비참의 끝으로 보이기도 하고 구원의 시작으로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한 인간의 탐욕과 허영, 혼돈과 불안, 고통과 몰락을 그토록 심도 깊게 보여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탁월하다는 한 마디로는 한없이 부족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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