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에 이별할 소소한 것들
요즘의 낮 기온은 거의 18도 이상을 유지하는 것 같다. 어제도 낮에는 마치 초여름을 방불케할 정도로 덥다고 느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두툼한 바지와 점퍼를 입고 덧신을 신고 사무실을 오고갔는데 어느새 봄은 찾아왔고 따뜻한, 아니 덥다고 느껴지는 봄기운에 헤롱헤롱 취할 정도다. 따뜻한 봄이 찾아온 것은 좋다. 겨울동안 추운 집과 사무실에서 움츠리며 버틴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따스함은 몸과 마음을 활짝 펴게 해준다. 차를 타면 온도를 내려 에어컨을 켜거나 창문을 열고 다닐 정도로 공기가 덥다. 지난 11월 첫날부터 지폈던 연탄불은 구멍 3개에서 2개로 줄였고, 며칠 지나면 서서히 연탄불 가는 것을 잊을 정도가 될 것이다. 방안 기온이 따뜻하니 연탄불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마치 연탄을 피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지난 겨울 따뜻하게 해주었던 연탄과 서서히 작별을 고할 준비가 되어가는 중이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조금씩 주변 정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작년 10월에 이사를 마친 다음 창고에 쌓아둔 짐들을 하나씩 꺼내어 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해야 한다. 혼자 살면서도 뭘 그리 쌓아둔 짐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것도 시간이 지나니 눈에서 멀어지게 되고 관심 밖이 되었는데 봄이 찾아오니 여기저기 쌓아둔 짐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이번에는 기어코 정리하여 오래된 것들과 청산을 해야겠다. 그래서 다음 이사 때에는 바리바리 쌓아두지 않게 할 것이다. 이번에는 과감하게 버릴 것이다. 그런 다짐속에 먼저 냉장고가 서서히 비어가고 있다. 오랜 숙원이었다. 냉동고나 냉장고의 가득찬 음식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웠다. 언제 조리하여 먹을 것인지 암울할 정도였는데 최근에 하나씩 하나씩 파먹기 시작하여 냉장고 진열대가 휑해지고 있다. 기분좋은 일이다. 오래된 음식물은 과감히 버리고 먹어야 할 식자재는 조리를 시작했다. 마트가는 것과 쇼핑몰 써핑을 줄이는 것도 한몫 했다. 어떤 사람이 쇼핑 중독은 마음이 외로워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은 여러 방식을 취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쇼핑을 통해 물건을 긁어모은다는 것이다. 뭐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한편으론 수긍이 가기도 하여 그 이후부터 쇼핑 습관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 덕에 주변이 조금씩 비어가고 있음을 본다.
며칠 전에는 냥이들의 집을 정리하였다. 세입냥들의 반발을 생각하여 완전한 철거를 하기까지는 몇 주 더 있어야 하기에 그중에서 낡고 헤진 집들은 과감히 털었다. 얼마나 깔고 누웠을까? 바닥이 니스를 칠해놓은 것처럼 반지르르하였다. 거기다가 고양이 특유의 냄새도 심했다. 그도 그럴것이 작년 가을에 태어난 냥이들은 구내염과 괄약근 조절이 약하여 여기저기 침과 변을 흘리고 다녔는데 요즘처럼 따뜻한 기온과 어우러져 꼬릿한 냄새를 마구 풍기는 것이었다. 소각통에 태울 물건들을 넣고 불을 지폈다. 순식간에 붙은 불은 짙은 연기를 쏟아냈다. 타는 물건만 넣었어야 했는데 유해물질이 섞여 매캐한 유독가스도 뿜어졌다. 독한 인간인 주인이야 그렇다지만 옆에 있다 지켜보던 나의 충견 한라는 오도가도 못하고 고스란히 연기속에 잠겼다. 많이 미안했다. 그렇게 한바탕 태우고 나니 창고가 조금은 깨끗해진 듯 보였다.
하지만 요즘 같은 건조한 봄날씨에는 야외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비록 뚜껑을 단단히 덮은 소각통이지만 나도 두 번 태우고 난 뒤 소각을 멈췄다. 이유는 마을 여기저기에 ‘논두렁 태우다 집안 풍지박산 난다.’는 현수막과 함께 언제 어디서나 불조심을 하자는 캠페인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이다. 봄맞이 청소하다 순간 방심하면 작은 불씨가 바람에 날려 큰불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동네마다 산불감시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태우기보다는 차곡차곡 정리하여 쓰레기 두는 곳에 갖다 놓는 것이 낫다.
지금쯤 한두 번 정도는 봄비가 흠뻑 내려야 한다. 그래야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된다. 농부에게뿐이랴! 비가 와야 흙과 꽃과 나물과 풀과 나무들이 일제히 큰 기지개를 켜며 우후죽순 일어날 것이 아닌가. 그래야 제대로 된 봄을 맞을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비는 오지 않고 날은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느껴지는 기온에 벌써 마음을 졸인다. 이러다 농사는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까? 이주 후면 감자를 심을 때가 다가오는데 이 농사철을 잘 맞이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그나마 있던 짧은 봄도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해가 거듭될수록 근심의 눈초리로 봄을 맞고 있다. 이런 이별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말이다.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