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 자기 비움의 은혜
사순절에는 너나없이 무엇무엇 ‘하지 않기’를 강조한다. 과욕(過慾), 과식(過食), 과용(過用), 과락(過樂) 등 모든 ‘지나침’을 삼가는 것이다. 사순절이면 ‘침묵, 절제, 금식’ 등 평소 제대로 하지 못한 경건 생활을 다짐한다.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일망정 새삼 의욕적으로 다짐하는 것은 정상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은 허용되고, 또 무엇은 금지되는가?
경건의 절기에 절제와 금기 행위는 권면할 만한 미덕이다.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모든 ‘지나침’(過)을 끊는 훈련을 작심한다. 그리스도교 환경운동은 사순절 기간만이라도 ‘리모콘 금식’, ‘종이 금식’, ‘소비 금식’, ‘탄소 금식’ 등을 권장하고 있다. 기후변화 시대에 필요한 미덕을 넘어, 생존전략이다. 이러한 ‘절제’는 평소 습관을 바꾸어 남다른 선택을 하는 일이다.
물론 금욕에도 기준이 있다. 성경에서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는 계명을 준수하는 일은 누구나 공감한다. 문제는 성경은 문제시하지 않으나, 전통에 따라 금지된 규칙들의 경우이다. 그것은 선과 악의 차원이 아닌, 문화와 정서 혹은 시대정신과 취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회사에서 유명한 ‘아디아포리즘’ 논쟁이 대표적이다. ‘아디아포라’의 사전적 뜻은 ‘그 자체로서는 가(可)한 것도 아니고, 불가(不可)한 것도 아닌 행위’를 의미한다. 대개 부수적이어서 대수롭지 않고, 무관심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일 경건주의 운동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규칙을 정하여 ‘댄스, 발레, 연극, 고리사채, 어음거래, 환금업, 연회, 술 취하는 일, 주사위 놀음, 호화로운 옷 입는 일’을 금지하였다. 영국의 청교도와 프랑스의 칼뱅파 위그노가 금기와 청빈을 엄격히 지킨 것과 그 맥락이 같다.
비교적 세속적 습관에 관대한 독일 개신교회도 사순절 기간만큼은 경건 생활 캠페인을 벌인다. 그 이름은 ‘일곱 주간의 포기’(Sieben Wochen ohne)이다. ‘일용품- 생명을 위한 수단’이란 주제로 벌이는 사순절 경건 생활 운동은 술은 물론 초콜릿 등 달콤한 군것질 금지, 육류 소비 줄이기,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 시청 절제 그리고 과도한 취미생활과 고질적인 습관의 중단 및 고치기에 힘쓰는 일이다. 언론(epd)의 공식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복음적인 경건 생활 참여자가 약 200만 명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순절 절제 운동은 평소 습관을 당분간 ‘포기’하려는 실천을 의미한다. 일상의 욕심을 자제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경건의 모양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물론 절제와 포기는 단순한 금욕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려는 자기 비움(Kenosis)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를 닮고, 배우며, 동행하려는 신앙의 수련 기간이다.
경건 훈련은 마음먹는다고 저절로 되지 않는다. 늘 유혹이 뒤따르고, 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유혹은 시작된다. 시인 문태준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마음의 유혹은 가장 간절하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번번이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것이 일상화된 이유는 그만큼 절제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사순절은 억지 경건과 무리한 절제가 아닌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기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와 화해하고, 세상의 아픔과 연대하며, 이웃의 고민과 공감하는 때이다. 고난의 십자가와 눈높이를 맞추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는 기회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순절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친밀감을 누리려고 한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경건 행진을 이어 가는 ‘아픔과 희망’의 절기를 통해 40일 동안 하루하루 대속의 은총에 감사하고, 의로운 삶을 결단하는 사람, 그것은 믿음의 순례자다운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사순절은 ‘고난주간’을 거쳐 부활을 향한다. 사순절을 경건하게 지키려고 한 사람에게 부활의 감격은 훨씬 클 것이 자명하다.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