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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0]
 
 
 
     
 
 
 
작성일 : 23-03-04 00:26
   
십자가로 가까이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082 [119]


십자가로 가까이 

 

지난 주 금요일 저는 세종시에 있는 한 작은 교회에서 마태수난곡과 십자가에 관한 설교를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몇 주 동안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를 지고 묵상했을 뿐이었음에도 저도 모르게 제 안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설교하고 온 다음 날이었던 토요일, 강남에서 교회 모임을 은혜 가운데 마치고 교회 승합차를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고약한 정체가 있었고 꽉 막힌 교차로에서 어쩔 수 없이 한 고급 승용차 앞으로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사과하는 마음으로 비상 깜빡이를 켰는데도 운전자가 단단히 화가 났나 봅니다. 연이은 경적 후에 상향등을 여러 번 깜빡이더니 그래도 분을 못 이겼는지 결국 차에서 내려 다가왔습니다. 라운드 티를 입은 거친 인상의 빡빡머리 아저씨였습니다. 창문을 내렸습니다. 만만치 않은 저의 얼굴을 보고는 잠시 동공이 흔들렸지만 준비한 일을 해야겠는지 차마 재현할 수 없는 욕설이 시전 되기 시작합니다. 교회에 대한 모욕도 꼼꼼히 챙깁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저는 매우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마음이 여리고 감정적으로도 민감한 제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흔들리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오히려 한순간이었지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사람의 욕 소리가 음소거 되더니 악에 받친 그 얼굴만 느린 화면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쿠엔틴 메치스(Quentin Matsys, 1466–1530)의 그림 속에서 예수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스쳤습니다.

 

 


 

 

‘저 사람은 어쩌다 저렇게 포악한 사람이 되었을까?...’ 사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이 교통지옥, 생존경쟁의 전쟁터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조금도 양보하지 못하는 그 마음 마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나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 있으니 그 우리 가운데, 그 모습 가운데 제 자신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진심을 담아 연신 사과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전하며 양해를 구했고 대신 욕은 하지 말라고 정중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쏟아 붓고는 제 풀에 지쳤는지 자기 차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제 마음이 쿵쾅쿵쾅 뛰었을 텐데 심장 박동도 안정적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생각해 보니 제 마음이 평안하고 죄악에 안타까워하는 가운데 영혼이 잠잠할 수 있었던 것은 전날 설교를 위해 십자가와 함께했던 몇 주 동안의 시간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모처럼 자전거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역시 자전거에는 자유와 평화가 있습니다. 집 앞에서 학교에 가는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뒤를 보며 키득거리고 있기에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노래를 불렀더니 둘이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꺄르르’ 하고 웃습니다. 제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웃음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저 또한 너무나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페달을 굴립니다. 반면, 중랑천 자전거길 옆 동부간선도로는 꽉 막혀있습니다.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가 잊을만하면 들려옵니다. 어제만 해도 저 길 위에 있었는데....그 자동차들 안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을까요?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흘린 보혈로 정케하옵소서 

 

Jesus, keep me near the cross, there a precious fountain;

Free to all, a healing stream, flows from Calv'ry's mountain.

(찬송가 439장 1절)   

 

파니 크로스비가 쓴 이 찬송시 처럼 우리의 신앙 여정은 십자가로 늘 가까이(near the cross) 나아가는 길입니다. 십자가를 향해 갈수록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보혈의 은혜는(free to all)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싸매시고 고치시는 치유의 물줄기(a healing stream)가 되어줍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후렴구의 번역에 심각한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마치 십자가가 삶에서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요단강을 건넌 후에야 십자가의 영광을 무한히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영원 안식 얻네 

 

그러나 원작 찬송시의 후렴구를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In the cross, in the cross, be my glory ever,

Till my ransomed soul shall find rest beyond the river. 

 

원작 찬송시는 속죄 받은 나의 영혼이 강 너머에서 안식을 얻는 그날까지,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순간순간마다, 삶 가운데 무시로 십자가가 나의 무한한 영광이 되리라는 놀라운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찬송가의 후렴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여 부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 일세

나의 영혼 영원히 안식 얻기 까지

 

사순절, 십자가를 묵상하고 바라보며 그 길을 걷다 보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이 십자가의 은혜로 정화됩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대단해 보이는 일을 하게 하는 힘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일에만 연관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자기도 모르게 조금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조금 더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성장이 그러하듯 그 변화는 조용합니다. 그 변화에는 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엡 4;13).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끝없이 회개하고 끝없이 변화하고 끝없이 성숙하는 끝없는 자기 초월의 연속, 십자가의 길입니다. 사순절, 우리 모두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그 발’을 떠올리며 한 걸음 한걸음 십자가 순례의 길을 걸어감으로 그 은혜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조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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