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산책
“걸음아 날 살려라!” 가깝든 멀든 주로 걸으신다는 지방의 원로 목사님의 농담에 이죽거릴 뿐, 걷기 운동은 재미는 포기한 노인들의 주종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식후에는 조금씩이라도 걸으라는 장인어른의 충고도 흘려듣지는 않았지만 실천이 더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10년을 지나보니 징그러운 사십대 남자의 둥그스름한 몸이 되어있습니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걸어 다니기보다는 자동차나 자전거로 움직이다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걷기 전도사로 유명한 의사의 책을 권유받고 나서 걷기 운동을 하는 아내가 나선 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오랜시간 걸어온 집사람의 제법 날렵하고 근성 있는 움직임에 짐짓 놀라면서도 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일 만보 정도를 쫓아가는데 이게 웬일? 점점 무릎에 무리가 오는게 아닙니까? 나태와 탐식으로 쳐져있었던 생활에 각성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틈만나면 졸졸 쫓아다니다보니 아내가 걷기 운동을 하는 것에는 건강 이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음을 알아챘습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남편에 아들 셋, 무려 남자 넷을 건사하느라 이리저리 뒤치다꺼리를 하다보면 사람이 지겨워지는 것은 일상다반사. 수인선 전동열차 선로 인접해 조성된 길을 걷다보면 잡념도 사라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라 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아내의 자유 시간을 방해하면서 쫓아다닌 보람이 있었던걸까요? 내내 뻐근했던 허리 통증도 완화되고 체력도 조금 올라왔는지 새벽 기상 시간에 전보다 몸이 가벼움을 느낍니다.
두런두런 대화하면서 걷는 길에는 많은 부수효과가 따릅니다. 대화 시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날씨나 길가 상점에 대한 시시콜콜한 주제부터 가족들 이야기와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도 나누고, 최근 일에 대한 의견도 꽤 심각하게 논의할 때가 있습니다. 걷다보면 생각도 정리되고 무슨 일이라도 처리한 것 같은 후련함도 느낍니다. 익숙해지고 보니 무릎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건강에 대한 우려에서 걷기 시작한 제가 이런 보람과 성취를 누리는 동안 아내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심각한 보행 자유 침해에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습니다. 방학과 팬데믹 이후엔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했던 아내의 일상에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었던 걷는 시간이 훼방받고 있었음을 눈빛으로 알 수 있습니다. 눈치 보이던 차에 바쁜 일도 겹쳐 다시 몇 주간 걷기를 멈췄습니다. 졸졸 따라다니던 귀찮은 그림자가 사라져서인지 훨씬 활기있는 표정입니다.
그래서 저도 혼자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막상 혼자 걸으려니 시간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걷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지만 대신 전도 팻말을 들고 나섰습니다. 이른바 ‘전도 산책’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전도 여행까지는 못해도 복음을 전하면서 가볍게 산책해주는 것입니다. 기왕 걷는 시간에 전도도하면 좋지 않을까요? 몸도 튼튼 영혼도 튼튼입니다.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꽃과 함께 요한복음 3장 16절도 쓰여 있습니다. 정면에서 오는 사람들은 전도팻말을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고 눈길을 피할 수 있기에 팻말 뒤에 작은 손가락 고리를 붙여서 뒷짐 지고 가는 방식입니다.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이 읽을 수도 있고, 조금만 속도를 붙이면 걷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나아가며 자연스럽게 눈에 띄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마라토너들이 번호표시로 쓰는 천에 말씀을 인쇄해볼까도 생각했는데 뭔가 좀 넘치는 느낌 때문에 참았습니다. 눈 마주침은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앞서 걸어가는 사람 뒷모습에는 별 생각 없이 시선을 둘 수 있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누군가 괴로운 마음으로 걷다가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마주할 수 있다면 소기의 목적 달성입니다.
응답은 이내 확실했습니다. 예닐곱 살쯤 되었을까요?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아이보다 조금 빨리 걸어가는데 이내 사거리 신호등에서 멈춰 섰습니다. 금방 따라오던 아이도 엄마와 함께 내 뒤로 다가와 멈춰 섰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뒤에서 앳된 음성이 들립니다.
“엄마. 저것 좀 봐. 당신. 을. 사랑하. 시는. 하나님?”
신현희/안산나눔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