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드리네
새해에 접어들면서 우리 교회는 봉헌 찬송을 변경했습니다. 같은 집이나 사무실 공간에서 가구를 재배치했을 때 신선한 느낌을 받듯이 봉헌 찬송과 같이 매 주일 예배 시간에 부르는 찬송은 1, 2년 주기로 바꾸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새로운 마음과 적절한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지요.
봉헌 찬송을 어떤 곡으로 바꿔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기존에 부르던 것은 통일 찬송가 69장 ‘나 가진 모든 것 다 주의 것이니’였습니다. 연가곡 ‘시인의 사랑’을 비롯한 아름다운 독일 가곡을 많이 남겨서 심히 흠모하는 로버트 슈만의 곡조와 이별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다음 주기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습니다.
결국 새로운 봉헌 찬송은 ‘주께 드리네’라는 곡이 선정되었습니다. 아마 거의 모든 분들이 새찬송가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을 떠올리셨을 것이지만 엄연히 그와는 다른 곡입니다. 이 찬송의 원제목은 ‘주께 드리네’이지만 그와 같은 혼란을 막고자 가사 첫 줄인 ‘내가 가진 것 중에서’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찬송은 제가 일전에 소개해 드린 노래 ‘고마운 사랑아’를 작곡한 류형선 선생님의 곡이며 성공회 찬송가에도 실린 곡입니다.
새로운 봉헌 찬송을 찾기 위해 고민하던 저에게 이 노래는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몇 주 전 어느 날 밤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몇 년 전에 ‘기독교 사상’에 설교문을 기고하셨던 어떤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몇 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목사님이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담백하면서도 통찰이 깊었던 그분의 설교를 듣고 싶어서 교회의 예배 실황을 듣게 되었는데 그 예배 중에 이 찬송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듣는 순간 제가 봉헌 찬송을 애타게 찾고 있던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이 귀한 선물과도 같은 노래를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단순한 노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결코 가볍지 않음을 느낍니다. 짧은 노래지만 부르면 부를수록 여운이 깊음을 느낍니다. 바흐는 그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엄청난 대작을 많이 남기기도 했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노래도 많이 작곡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며 바흐가 우리 시대, 우리 나라, 우리들의 교회의 일원으로 존재했더라면 남겼을 만한 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우리 사는 동안에 가장 소중한 주님께
기꺼이 드리네 모두 드리네
넉넉히 받으실 주께 드리네
아무 가진 것 없어도 항상 부족하여도
약한 이 몸을 높이어 가장 큰 일을 맡기셨네
기꺼이 드리네 모두 드리네
넉넉히 받으실 주께 드리네”
영롱한 눈물이 맺힐 정도로 아름다운 가사입니다. 매 주일 우리가 주께 드리는 것은 우리가 가진 물질의 일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드리는 것이며,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십자가 사랑에 대한 화답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을 주신 주님은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마음으로 주께 드립니다.
가진 것 없고 항상 부족하지만, 우리가 드리는 것을 주님께서는 넉넉히 받아 주십니다. ‘넉넉하다’는 것이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관한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받아 주시는 주님께서도 넉넉하게 받아 주신다니 참으로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의 셈법으로 계산하지 않으시고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의 정성을,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대상 29:14
https://youtu.be/CFXMCONx3ZA
조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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