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도 연중무휴
시작하면 영락없이 혼자일 수밖에 없을 새벽기도를 해야 할까 말까 고민했던 2011년 4월, 처음 365 새벽기도회를 작정하게 된 계기는 뜻밖에 눈에 들어왔던 음식점 현수막 문구였습니다. “고객님이 주무시는 순간에도 육수는 끓고 있습니다.” 그 옆에 있었던 큰 글씨 ‘365일 24시간 연중무휴’는 손님 입장에서 보자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주는 말이지만, 식당 운영자에게는 삶 전체를 갈아 넣는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책임과 속박의 선언과도 같습니다. 혼자서는 실현 불가능할 뿐 아니라, 모두가 잠든 시간 누군가는 올빼미처럼 밤새 깨어 있어야하는 365일 24시간 영업은 편의점, 카페와 함께 ‘피로 사회’ 대한민국의 일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현상입니다. 요즘은 24시 영업을 하던 식당과 편의점도 조금씩 심야에 문을 닫거나 근무인원 감축 또는 무인화 시스템으로 바뀌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365일 24시간 연중무휴 영업을 고수하는 곳이 없지 않습니다. 때로는 치열한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는 것도 신앙적 결단일 수 있지만, 그 당시 국밥집 현수막 문구를 보고 당장 드는 생각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하루 1시간 새벽이든 저녁이든 깨어 기도하는 것을 지속하는 것이 부담이라면 목회자로서 막중한 사명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 길로 시작했던 365 새벽기도회였습니다.
올해만큼은 연휴기간에 새벽을 쉴까 생각해보다가 그냥 종전대로 한 이유도 음식점 마다 붙어있는 “연휴기간 정상영업”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리두기 인원제한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했었던가에 의심을 품을 정도로 불 꺼지지 않고 북적이는 식당과 카페를 보면서 오랜만에 모인 아버지 댁에서 온가족이 하루 자고 올 계획이 아니라면 새벽을 쉴 이유가 없었습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체력 단련장에 매일 운동하러 가는 이유는 심신의 건강과 아름다운 몸매를 가꾸기 위함입니다. 학원이나 도서관에 시간을 정해두고 매일 오가는 사람이 있다면 단순히 배움과 같은 지적활동이나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기도 하겠지만, 성적향상을 꾀하든지 시험 또는 논문을 준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벽기도회에 매일 가는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고 얻을 수 있을까요? 날마다 만나는 교우들의 면면을 보면 결코 사리분별이 명확하지 못한 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분명한 유익이 있으니 상황 여건을 따지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강추위가 찾아와도 매일 오가는 것입니다.
먼저는 경건의 막대한 유익 때문입니다. 돈을 벌자면 쉬지 않고 새벽부터 달려가는 사람들 사이에 ‘건강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말이 공리로 통하니 건강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지만 사도 바울에게 육체적인 훈련이 가져다주는 건강과 아름다움은 경건에 비교할 수 없는 ‘약간의 유익’에 불과합니다.
육체적인 훈련이 가져다주는 이익은 대단한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경건한 생활은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 그것은 현세의 생명을 약속해줄 뿐 아니라 내세의 생명까지도 약속해 줍니다.
공동번역 디모데전서 4장 8절
새벽기도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교인으로서 의무이행이나 좋은 생활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경건이 주는 유익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경건(godliness)이 하나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는(벧후1:4,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신앙의 적극적 표현임을 감안한다면 ‘하루의 첫 시작을 정한 시간에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일’처럼 경건에 이르는 좋은 습관은 또 없을 것입니다. 수익이 보장된 일도 하루 쉬는 것을 손실로 여겨 멈추지 않는데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현재와 미래의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뜯어 말린다 해도 결코 쉴 수 없을 것입니다.
포기에서 오는 자유와 쉼도 새벽기도의 놓칠 수 없는 유익입니다. 보통 몇 십 년을 새벽기도 해왔다는 사람을 떠올릴 때, 고지식하고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를 떠올릴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매일 새벽기도라는 강박적 행위를 통해 점점 더 완고해질 뿐,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리기는 어렵습니다. 꾸준히 새벽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몰두하며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을 일을 멈추고 잠들지 않는다면 매일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청년들이 익숙지 않은 새벽에 나오려고 밤을 새는 경우를 본적 있는데, 그렇게 매일 하다가는 밤낮이 뒤바뀌고 말 것입니다. 정한 시간까지 마치지 못한 일이나 야식, 늦은 밤의 유희를 산뜻하게 포기한 결과는 가벼운 새벽의 몸과 마음 상태입니다. 포기에서 오는 자유에 덤으로 쉼이 있습니다. 새벽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도 있지만 또한 많은 시간 침묵하고 듣습니다. 마음과 귀를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자신의 굳어진 신념을 풀어놓고 무장해제하는 시간입니다. 30분 정도 기도회를 마친 뒤, 출근을 위해 곧장 달려가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읊조림과 묵상으로 이어가는 새벽은 수면시간을 제외하고 가장 긴 침묵과 멈춤을 제공합니다.
습관이 된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못할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유익을 알고 나면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당장 관건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제시간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신현희 /안산나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