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죽의 기억
첫 목회지인 양양에서 2004년 11월초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교회에 한 할머니 한분이 찾아오셨다. 홍천의 한 교회에 출석하신다는 그 분은 75세 된 이○순 권사님이셨다. 나를 찾아온 이유를 말씀하셨다. 교회 앞 가까운데 위치한 임대아파트에 자신의 딸이 살고 있는데 현재 말기 위암에 걸려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딸이 아직 예수를 믿지 않고 있으니 자신의 딸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딸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하셨다. 어릴 적부터 사고를 많이 치고 방황을 많이 한 딸은 중학교 때 집을 나가서 다시 만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10대 후반에 집을 나간 딸을 20년이 지나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이미 암이 심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돌아온 탕자 같은 딸이었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딸이 죽기 전에 복음을 전해달라는 권사님의 부탁에 즉시 권사님을 따라 아내와 함께 딸이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집에 가보니 딸은 위암이 이미 온 몸에 퍼져 있었고 항암치료후유증으로 머리도 많이 빠져 있었다. 이름은 허○순, 나이는 43살이었다. 그녀에게 복음을 잘 설명한 후에 예수님을 구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겠느냐고 물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함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드리고 나니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가 자신의 지나온 과거의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 때 홍천에서 가출해서 태백의 탄광촌으로 들어가 다방과 술집의 아가씨로 생활했다고 한다. 후에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를 못나서 이혼을 당했고 그 후 계속 술집아가씨 생활을 하다가 술집을 운영하였고 지금 두 번째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남편은 심한 술주정뱅이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아프면 잘 돌봐야 하는데 돌보진 않고 술이 취해서 들어오면 밤새도록 침대 앞에서 담배를 피워대면서 잠을 못 자게 해서 괴롭다고 했다. 최근에는 자기 장모님인 이권사님에게 폭언을 하며 발로 차서 갈비뼈를 부러뜨리기도 할 정도로 나쁜 사람이었다.
그 상황을 전해 들으니 나와 아내의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두 모녀를 그곳에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이분들을 일단 사택으로 모셔 가자고 했고 나도 아내의 제안에 동의했다. 두 사람도 그렇게만 해 주시면 너무 좋겠으나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그녀의 남편을 찾아갔다. “당신이 당신 아내를 잘 돌보지 않을 것 같으니 우리가 교회 사택으로 데리고 가서 잘 돌보겠다”고 이야기하니 이 남편이 전혀 주저함이 없이 데리고 가라고 했다. 후에 알고 보니 이 남편은 이때 이미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는 중이었다.
눈이 엄청 많이 내렸던 그날 모녀를 차에 태워 교회 사택으로 데리고 왔다. 그렇게 갑작스런 암환자 호스피스사역이 시작되었다. 안방의 침대를 내어 주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함께 예배드리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우울하지 않도록 재미있게 지내며 두 달가량을 함께 했다. 아내는 어머니권사님과 함께 그녀의 목욕도 도와주었다. 중간에 몇 번 그 남편이 술이 만취되어 한 밤중에 찾아와서 주정과 행패를 부리는 일들도 있었다.
어느 날 이권사님이 잣죽을 끓이셨다. 잣에 항암효과가 있다는 것을 들으시고 딸을 위해 끓인 것이다. 믹서로 잣과 쌀을 갈아서 정성을 다해 끓여 딸과 우리에게 주었는데 먹다보니 식감이 좀 이상했다. 확인해 보니 믹서 뚜껑의 고무패킹이 잣과 쌀과 함께 갈려버린 것이다. 나이 드신 권사님이 사용법을 잘 모르셔서 실수를 하신 것이다. 그때 속상해하셨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11월 초에 사택에 들어와 12월 말이 되었을 때는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서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온 몸에 암이 다 퍼져서 피부에 암덩어리들이 만져질 정도였다. 함께하는 동안 믿음이 자란 허○순 성도는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사택은 1층이고 예배당은 2층이라 아픈 몸으로 혼자서는 걸어서 계단을 오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업고 2층 예배당으로 올라간 뒤 예배당 뒤편에 눕혀 놓았다. 2층예배당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에서 내 등에 업힌 그녀는 “전도사님 미안해요. 무겁죠?”하며 말했다.
얼마 후 그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죽기 전에 감리사님을 모셔서 세례도 베풀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정성껏 장례를 치러주었다. 장례를 마친 후 우리에게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이 권사님을 아내와 함께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권사님은 아마도 딸이 교회사택에서 전도사부부의 사랑을 받으며 지냈던 마지막 두 달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잣을 먹을 때마다 20년 전 이권사님과 하늘나라에 간 허○순성도가 눈에 아른거린다. 이권사님은 아마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텐데 돌아가시기 전 한번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