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종교 신념의 위험
뒤르껭에 의하면 종교는 사회안정을 증진시키고,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 종교는 사회통제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고, 사회변혁에 동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개인과 관련해 종교는 삶의 의미를 제공해 긴장을 해소히고, 박탈을 경험한 이들에게 위로를 줍니다. 또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소속감과 연대감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왜곡되면 개인은 물론 사회적 흉기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시블레즈 파스칼은 유명한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이고, 발명가이자 작가이며 또 심리학자입니다. 하지만 파스칼은 신학과 철학에 더 관심이 많은 신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파스칼은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해 유명한『팡세』를 썼습니다. 파스칼은『팡세』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또 역사상 가장 잔인한 범죄는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다며 “사람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할 때만큼 기쁘고 용감하고 철저하게 악을 행하는 일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자신도 교황청과 예수회로부터 이단이라는 비난을 들었던 파스칼은 이단으로 규정되어 교황청과 예수회로부터 공격받는 얀세니즘 성직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썼습니다. 시골에 사는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그 글에서 파스칼은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데도 명예나 재산의 상실을 두려워하여 살인을 허용하거나 묵인하는 법률은 결코 없습니다. 신부님,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그렇게는 하지 않습니다.”라며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성직자와 신자를 억압하고 처벌하는 교황과 예수회를 비판했습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해지는 악행은 더없이 잔혹하고 철저합니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상에서 벌어진 250여 차례의 전쟁으로 1억1000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문제는 그 전쟁의 대부분이 사랑과 용서, 자유와 평화를 가르치고 살인을 금지하는 종교가 요인이었습니다. 동화적이고 목가적인 남부 프랑스의 소도시인 베지에의 모든 시민을 잔인하게 학살한 베지에 학살로 대표되는 십자군전쟁, 십자군전쟁 이후 수십만 명의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목숨을 빼앗은 종교재판,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로 대표되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벌인 위그노 전쟁, 기독교를 앞세워 잉카제국을 정복하면서 100년 사이에 7천만 명의 인디오를 살해한 사건 등은 모두 종교적 이유를 들어 사람을 잔인하게 학살한 사건들입니다.
디트리히 본 회퍼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며 “종교는 죽은 것,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핵심에는 전혀 다른 것, 바로 하나님 자신이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다. 기독교는 그분을 대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본 회퍼가 말하듯 기독교의 핵심은 제도적인 교회에 있지 않습니다. 그 핵심에는 하나님이 자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종종 하나님이 아니라 제도적인 교회와 개인을 위해 복음을 왜곡합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일수록 광신적입니다. 하지만 광신적인 종교는 위험합니다. 종교가 누군가를 처단하는 것이 신의 명령이라고 믿을 때 더욱 위험합니다. 신의 가장 크고 중요한 명령은 신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을 때 종교는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칼이 됩니다.
박경양/평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