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순댓국 맛집
내가 사는 이천에 맛있는 순댓국집이 몇 군데 있다. 그 중에서 두 집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천하면 한정식이 유명해서 외지에서 오는 분들은 대부분 한정식 집을 찾아 가지만, 혹시 이천에 왔는데 갑자기 순댓국이 먹고 싶을 때 가볼만한 곳들이다. 이천 시내 중리동에 있는 용인순대국집과 이천 부발읍에 위치한 이천순대국집이다. (한글맞춤법상 사시시옷을 적은 순댓국이 맞지만 일반적으로 순대국이라고 쓰기에 이후로는 순대국이라고 표기하겠다)
이천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용인순대국집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20년 이상 된 식당이다. 식당 사장의 고향이 용인이라 용인순대국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간판과 가게만 봐도 오래된 역사가 느껴지는 이 집은 이천 사람들만 아는 순대국맛집으로 단골손님들이 많다. 순대국밥의 양도 정말 푸짐하다. 비린내도 안 나고 깔끔하고 담백한 순대국밥의 깊은 맛을 경험하게 해 준다. “이 집은 왜 비린내가 안 나죠?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하고 물으니 손님이 많아서 하루종일 정성껏 끓인 사골국물이 즉시 팔리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장사안되는 가게는 끓인 국물이 오래 보관하니 잡내가 더 생기는게 당연하다. 그래서 손님많은 가게가 잘 될 수 밖에 없나보다. 내가 이집에 데려간 이들은 모두 정말 맛있다고 감탄했다.
자리에 앉으면 김치와 깍두기, 새우젓과 다진 양념, 마늘장아찌와 썰어놓은 청양고추가 밥과 함께 먼저 나오고 잠시 후 순대국이 나온다. 보통 국밥집은 김치보다 깍두기가 맛있는데 이집은 적당히 익은 김치가 참 맛있다. 다른 순대국집에서는 나오지 않는 마늘장아찌도 입안을 깔끔하게 해준다. 순대는 당면으로만 만든 찰순대가 아니라 토종순대가 들어있다. 그 외에도 쫀득한 오소리감투와 내장과 머릿고기가 푸짐하게 들어있는데 모두 맛있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청양고추와 들깨가루를 넣어서 먹다가 중간에 다진 양념을 넣어서 먹으면 두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 7년 전 우리교회 권사님께 맛있는 순대국집을 한 곳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맛집으로 소개해주신 집이라 자주 갔는데, 갈 때마다 참 충실한 순대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허기가 많이 졌을 때 혼자 찾아가서 순대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더 이상 소원이 없다” 할 정도로 만족감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이곳은 오전 6시 30분부터 영업을 한다. 점심시간에는 손님들로 바글바글하고 젊은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로 가득 찬다. 시내에서는 용인순대국집이 맛집이다.
또 한군데 추천할 순대국집은 부발읍 OB맥주공장 맞은편에 위치한 이천순대국집이다. 이 집은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주황색 큰 간판에 가게 이름이 흰색으로 붙어 있어서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한눈에 발견하기가 쉽다. 간판 우측에는 고기 삶고 사골 육수 끓이는 집이라고 쓰여 있다. 이천 시내는 주차가 어려운데 이집은 주차장도 나름 넓게 확보되어 있다. 용인순대국집보다는 훨씬 나중에 생긴 가게인 만큼 매장의 느낌 자체가 좀 더 깔끔하다.
내가 이 집을 가는 이유가 있다. 이천순대국집은 일반적인 순대국도 판매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막창순대국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막창은 돼지 대장의 직장 아랫부분을 말한다. 사실 나는 이집에서 막창순대국이란 것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막창은 주로 구워먹는데 순대국에 넣어서 먹다니 참 생소했다. 찾아보니 전국에 막창순대국집이 많지는 않지만 곳곳에 있었다. 보글보글 끓는 새하얀 국물이 담긴 뚝배기 안에 당면으로 만든 찰순대와 막창이 가득하게 들어있다. 막창이 나오는 대신에 머리고기와 내장은 안 들어간다. 잡내도 전혀 나지 않는다. 국물도 맛있고 순대와 막창도 맛있다. 적당히 익은 김치와 석박지, 양파와 고추와 쌈장이 나온다. 테이블에는 다른 순대국집처럼 들깨가루와 후추가 놓여있고 새우젓과 매운 양념장과 고추기름이 더 있는 것이 특색이다.
어떻게 이 집은 막창순대국이란 메뉴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한쪽 벽면에 이 식당의 사장님이 이 순대국집을 창업한 스토리가 사진과 함께 적혀있다. 김범수 사장님(58세)은 과거 한 순대국 체인사업본부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미국 LA점을 오픈할 때 총괄실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순대국 판매와 영업에 관련된 일을 했던 그는 2003년부터 전국의 유명하다는 순대국집을 찾아다니며 전국에 있는 여러 순대국의 장인들을 만났다고 한다. 대략 40-50년 이상 대를 이어 그 집만의 비법을 계승하여 고집스럽게 순대국만을 만들고 있던 그 분들에게 “제게 비법을 가르쳐 줄 수 없냐?”고 물을 때마다 문전박대는 물론 주방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전주에서 유명한 남문시장 피순대집 사장님과 전북 정읍 화순에서 막창순댓국으로 유명한 화순옥의 사장님, 이 두 곳의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받아 지금의 순댓국집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분들은 “젊은 놈이 먹고살라고... 기특하네” 하시며 직접 가마솥 뚜껑을 열어 집안 대를 이어 내려온 비법을 공개해 주셨다고 한다. “이렇게는 안 해봤지? 하라는 대로 해 봐! 해 보고 나서 다시 물어봐!” “잔재주 없이 좋은 재료만을 쓰고 많이 퍼줘야 돼!” “고기는 씹으면 부드럽고 단물이 나와야 맛있는 고기야!” 김범수 사장님은 두 어르신이 해주신 말씀들을 지금까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맛있는 순대국을 향한 사장님의 그 열정과 노력이 현재 소문난 순대국맛집으로 열매를 맺고 있다. 요즘처럼 쌀쌀한 겨울에 혹시 이천에 오실 일이 있으시다면 추천 드린 맛좋은 순대국집을 방문하셔서 깊은 맛을 즐기시기 바란다.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