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치(算痴) 하나님
노래를 못하는 사람을 음치(音痴)라 한다면 셈을 못하는 사람은 산치(算痴)라 할 수 있겠다. 이 산치에 대해 언젠가 문학평론가 도정일은 찬사를 보낸 적이 있었다. 산치예찬. 문학을 하는 마음이 계산에 밝아서야 되겠는가, 1 더하기 1이 반드시 2인 세상에 문학이 설 자리가 있겠는가, 문학이란 이런 산치의 마음에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그런 식의 얘기였다. 그런데 이 산치, 왠지 낯익다.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이 산치에 해당되지 않으시던가. 그분의 셈은 늘 이상했고 언제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침략해온 미디안과 전투를 치르기 위해 기드온은 3만 2천 명을 모았다. 메뚜기 떼처럼,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미디안과 아말렉의 연합군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 많다고 하신다. 줄이고 줄여 300, 그것도 레오니다스가 이끌었던 스파르타 정예군 같은 300이 아니라 고작 물먹는 자세가 좀 남달랐던 300명이었다.
문제는 수가 아니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불렀다. 문제풀기 1 대 100도 아니고 1 대 850이라니, 이 무모한 도전, 턱없는 계산 앞에 하나님은 엘리야의 손을 들어주신다.
문제는 수가 아니었다.
우상숭배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엘리야는 곧바로 모든 것이 회복되리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사에서 늘 경험하듯 승리는 그렇게 신속히 오지 않는다. 이세벨은 반격했고 엘리야는 절망했다. 절망에 빠진 엘리야는 하나님께 이제 됐으니 나를 죽이시라 핏대를 올렸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열심인 자는 나 하나뿐이라고, 자신이 최후의 1인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웬걸,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말씀하신다. “너 말고도 7000명이 있다.”
문제는 수가 아니었다.
5000명, 그것도 남자만 5000명인 이 군중을 어찌 먹일 것인가?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두세 사람이나 먹을 만한 보리로 만든 빵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뿐인데. 이건 뭐 장난도 아니고.. 그런데 예수님, 그것으로 보란 듯 5000명을 먹이셨다. 어떻게인지는 알 길이 없다. 기적이란 그런 것이니까.
문제는 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수가 문제다.
교회에 대하여 첫 번째로 묻는 질문은 한결같다. “교인이 얼마나 되죠?” 이 질문은 조금 고급진 형태를 띠기도 한다. “1년 예산이 얼마나 되나요?” 교회가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고 있는지, 사람을 불편케 하는 진리가 교회에서 선포되는지 이젠 아무도 묻지 않는다. 사람들은 계산에 능하게 되었고 문제는 수가 되어버렸다.
산치이신 하나님은 이 능수능란한 계산의 달인들 앞에 그만 설 자리를 잃으셨다. 그리하여 산치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을 닮은 산치를 그리워하며 수고로이 그를 찾아 헤매고 계신다.
이진경